항목 ID | GC0780043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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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三一運動 |
영어공식명칭 | March 1st Movement |
이칭/별칭 | 3·1만세운동,기미독립운동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
지역 | 강원도 철원군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김영규 |
[정의]
일제 강점기 강원도 철원 지역에서 전개되었던 독립 만세 운동.
[개설]
일제 강점기 1919년 3월 1일을 기점으로 강원도 철원군과 김화군에서 일제 식민 통치에 항거하여 주민들이 독립 만세 운동을 일으켰다. 일제 강점기 강원도 철원군과 김화군은 각각 인구가 10만 명에 육박하였고 농업과 광업이 성행하여 경제 규모 면에서 당시 춘천과 원주에 필적할 만한 거대한 군이었다. 철원군과 김화군은 서울에 인접한 수도권이었고 1914년 경원선이 부설되면서 원산과 금강산으로 통하는 사통팔달 요충지여서 급격하게 상업도시로 발전하였다. 이러한 입지적 조건으로, 철원군은 강원도에서 가장 빠르게 만세 운동을 일으킨 지역이다.
[강원도 3·1운동의 전개 양상]
강원도의 3·1운동은 1919년 3월 10일 철원을 시작으로 약 2달 간에 걸쳐 항일 만세 운동으로 전개되었다. 강원도에서도 일부 자생적으로 만세 시위가 계획되고 전개되기도 하였으나, 서울에서 「독립선언서」가 전달되고 서울의 3·1운동 소식을 들으면서 각 지역별로 협의를 거쳐 시위가 시작되었다.
[철원 지역 3·1운동의 전개]
철원 지역은 평강 천도교구장 이태윤을 통하여 철원의 천도교 교훈 최병훈에게 200매, 김화 천도교인 채장숙에게 150매가 전달되어 3·1운동의 도화선이 되었다. 철원군은 강원도에서 가장 빠르게 독립 만세 운동을 일으킨 지역이다. 철원군은 경원선 철도가 읍내를 지나 서울의 정보가 어디보다 빨리 들어오는 곳이었다. 더구나 1919년 3월 2일과 3일 천도교인들이 군내에 독립선언서를 뿌렸고 민중을 계몽함으로써 곧 만세 운동을 계획할 수 있었다. 철원읍에서 독립 운동은 1919년 3월 10일과 11일, 18일에 일어났다. 철원읍 만세 운동을 추진한 것은 기독교회와 연결된 학생과 철원 청년회의 청년들이었고, 3월 18일 철원읍 장날의 만세 운동은 천도교인이 추진하였다. 3월 12일에 있었던 갈말면의 만세 운동은 서당 훈도와 학생이 주동하였다. 4월 8일 내문면의 만세 운동은 천도교도가 추진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