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화읍 3·1운동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7800437
한자 金化邑三一運動
영어공식명칭 Kimhwaeup 3.1Manseundong
이칭/별칭 김화읍 3·1만세운동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사건/사건·사고와 사회 운동
지역 강원도 철원군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김영규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발생|시작 시기/일시 1919년 03월 28일연표보기 - 김화군 창도면 창도리 만세 시위 발생
발생|시작 시기/일시 1919년 03월 29일연표보기 - 김화군 창도면 창도리 만세 시위 종결
발생|시작 시기/일시 1919년 04월 04일연표보기 - 김화군 근동면 하소리 만세 시위 발생
발생|시작 장소 창도리 3·1만세운동 - 강원도 김화군 창도면 창도리
발생|시작 장소 하소리 3·1운동 - 강원도 김화군 근동면 하소리

[정의]

1919년 3월 말과 4월 초 강원도 철원 지역이었던 김화에서 전개되었던 항일 만세 운동.

[개설]

강원도 철원군은 경원선 철도가 읍내 한복판을 지나기에 서울의 정보가 거의 실시간으로 전달되어 강원도에서 가장 빠르게 3·1운동이 일어날 수 있었다. 천도교와 기독교 조직을 중심으로 민중 계몽운동이 활발하게 진행되었으며, 1919년 3월 2일과 3일 천도교인들이 철원군내에 「독립선언서」를 배포하였고 곧 만세 운동이 전개되었다.

[역사적 배경]

3·1운동 은 외세의 침입에 대항하여 전개된 동학농민운동, 애국계몽운동, 의병활동 등 일련의 민족운동이 민족 내부에 축적되었다가 제1차 세계대전 직후 국제정세 변동을 주체적으로 기민하게 포착하여 봉기한 독립운동이다. 강원도 김화 지역[현 강원도 철원군 김화읍]에서 전개되었던 만세 운동의 주동 인물은 김연태였다. 김연태는 1919년 3월 27일부터 28일 낮까지 김현기와 함께 주민을 설득시켰고, 이를 계기로 만세 운동이 전개되었다.

[경과]

김화군 창도면 창도리[현 북한 지역]에서 1919년 3월 28일 밤 8시경 관디골 서당에 약 100명이 모여 장터를 향해 행진하며 만세를 외쳤고 늦은 밤까지 시위를 하다가 새벽에 해산하였다. 이튿날인 1919년 3월 29일 아침부터 모인 군중들은 다시 만세를 외쳤다. 당시 창도리는 광산업이 시작되어 일본인이 다수 거주하고 있었으며 우편소가 설치되어 있던 곳이다.

1919년 4월 4일 김화군 근동면 하소리[현 북한 지역]에 모인 군중은 김화면[현 김화읍]까지 만세 행진을 하였다. 하소리에서 약 100명의 군중이 출발하였는데 김화면[현 김화읍]에서 시위를 벌일 때는 약 300~500명으로 늘어났다. 지역의 양반과 농민들로 구성된 군중은 수비대와 헌병들의 제지를 받았으나 이에 항거하며 만세 운동을 전개하였다.

[결과]

강원도 김화 지역에서 만세 운동을 주도했던 김화보통학교 4학년 이홍식은 일경에 체포되어 약 1주일 동안 고문을 당하다가 석방되었다.

[의의와 평가]

당시 강원도 철원 지역보다는 시기가 조금 늦지만 김화 지역에서도 각 마을별로 만세 운동이 활발하게 전개되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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