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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학돌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001205
한자 崔學乭
분야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경기도 포천시 신북면 만세교리
시대 근대/개항기
집필자 이계형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877년연표보기 - 최학돌 출생
몰년 시기/일시 1945년연표보기 - 최학돌 사망
출생지 최학돌 출생지 - 경기도 포천시 신북면 만세교리
성격 독립운동가
성별

[정의]

일제 강점기 경기도 포천 출신의 독립운동가.

[활동 사항]

최학돌(崔鶴乭)[1877~1945]은 1877년 경기도 포천군 신북면 만세교리[현 경기도 포천시 신북면 만세교리]에서 태어났다. 이후 일제 강점기인 1919년 3월 30일 경기도 포천군 신북면에서 전개된 독립 만세 운동을 주도하였다. 잡화상을 하던 최학돌조훈식(趙薰植)·조종연(趙鍾淵) 등과 함께 조선 민족 독립 선언에 찬동하여 동민들을 규합, 만세 운동을 일으키고자 하였다.

최학돌조훈식 등이 작성한 3·1 운동 취지서를 경기도 포천군 신북면 삼성당리 구장 서상련(徐相蓮)을 비롯하여 고일리·심곡리·외일리의 각 구장에게 배부하였다. 취지서에는 “이튿날 30일 아침 포천군 신북면사무소 앞에 집합하여 조선 독립 만세를 외칠 터이니, 이민(里民)들을 선동하여 이에 참가시키라. 만약 불응하면 집에 불을 놓고 기타 위험한 피해를 입힐 것이다.”라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거사 당일인 3월 30일, 이들은 신북면사무소 앞에 집결하였는데, 이때 인근 각지에서 모인 군중은 1,000여 명에 달하였다. 조계식은 1,000여 명 군중과 더불어 독립 선언식을 거행하고 독립 만세를 소리 높여 외치며 시위행진을 전개하였다. 그러던 중 시위를 저지하는 일본 경찰의 탄압을 받아 시위대는 해산되었고, 최학돌은 일본 경찰에 체포되었다. 이 일로 1919년 5월 23일 경성 지방 법원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년을 받아 공소하였으나 7월 5일 경성 복심 법원과 9월 11일 경성 고등 법원에서 각각 기각, 형이 확정되어 옥고를 치렀다. 1945년에 사망하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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