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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001201
한자 趙薰植
분야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경기도 포천시 신북면
시대 근대/개항기
집필자 이계형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추모 시기/일시 1995년 - 조훈식 건국 훈장 애족장 추서
출생 시기/일시 1864년 10월 10일연표보기 - 조훈식 출생
출생지 조훈식 출생지 - 경기도 연천군 영근면 은대리
활동지 조훈식 활동지 - 경기도 포천군 신북면
성격 독립운동가
성별

[정의]

일제 강점기 경기도 포천 지역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활동 사항]

조훈식(趙薰植)[1864~?]은 1864년 10월 10일 경기도 연천군 영근면 은대리에서 태어났다. 이후 일제 강점기인 1919년 3월 30일 경기도 포천군 신북면[현 경기도 포천시 신북면]에서 만세 운동을 전개하였다. 서당 교사 조훈식조계식(趙啓植)의 집에서 조종연(趙鍾淵) 등과 함께 손병희(孫秉熙) 등이 발표한 조선 민족 독립 선언에 찬동하여 동민들을 규합, 만세 운동을 일으키고자 하였다.

1919년 3월 29일 조훈식은 조종연과 취지서 10통을 작성하고 이를 조계식·최학돌(崔學乭) 등으로 하여금 경기도 포천군 신북면 삼성당리 구장 서상련(徐相蓮) 등 여러 구장에게 배부토록 하였다. 취지서에는 “이튿날 30일 아침 포천군 신북면사무소 앞에 집합하여 조선 독립 만세를 외칠 터이니, 이민(里民)들을 선동하여 이에 참가시키라. 만약 불응하면 집에 불을 놓고 기타 위험한 피해를 입힐 것이다.”라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1919년 3월 30일 신북면사무소 앞과 경기도 포천시 신북면 가채리 등지에서 마을 주민 약 1,000명이 모였다. 조훈식은 1,000여 군중과 더불어 독립 선언식을 거행하고 독립 만세를 소리 높여 외치며 시위행진을 전개하였다. 그러던 중 시위를 저지하는 일본 경찰의 탄압을 받아 시위대는 해산되었고, 조훈식은 일본 경찰에 체포되었다. 이 일로 1919년 5월 23일 경성 지방 법원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년을 받아 공소하였으나 7월 5일 경성 복심 법원과 9월 11일 경성 고등 법원에서 각각 기각, 형이 확정되어 옥고를 치렀다.

[상훈과 추모]

1995년 건국 훈장 애족장이 추서되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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