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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000729
한자 茝山祠
분야 종교/유교,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건물
지역 경기도 포천시 신북면 가채리 678
시대 근대/개항기
집필자 이근호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건립 시기/일시 1906년연표보기 - 채산사 건립
훼철|철거 시기/일시 1920년연표보기 - 채산사 일본군에 의해 훼철
개축|증축 시기/일시 1935년연표보기 - 채산사 재건
훼철|철거 시기/일시 1943년연표보기 - 채산사 일본군에 의해 재훼철
관련 사항 시기/일시 1949년연표보기 - 채산사 복원
특기 사항 시기/일시 1975년연표보기 - 채산사 해체 복원
특기 사항 시기/일시 1986년연표보기 - 채산사에 최면식을 배향
문화재 지정 일시 1976년 08월 27일연표보기 - 채산사 경기도 기념물 제30호로 지정
현 소재지 채산사 - 경기도 포천시 신북면 가채리 678지도보기
성격 사당
정면 칸수 3칸
측면 칸수 2칸
소유자 최종규
관리자 최종규
문화재 지정 번호 경기도 기념물 제30호

[정의]

경기도 포천시 신북면 가채리에 있는, 최익현(崔益鉉)을 모신 사당.

[개설]

채산사는 한말의 대유학자이자 의병장으로 활동한 최익현[1833~1906]과 우국지사 최면식(崔勉植)[1891~1941]을 봉향한 사당이다.

[위치]

채산사경기도 포천시 신북면 가채리에 위치한다. 평지에 자리 잡고 있으며, 앞뒤로 시야가 트이면서 들이 펼쳐져 있다. 뒤쪽 좌측 산기슭에 청성사가 있다.

[변천]

채산사는 1906년 최익현이 대마도에서 순국한 뒤 1907년 이청열(李淸烈)이 주도하여 유림들과 함께 처음 건립하였다. 1920년 일본군에 의해 훼철되었다가 1935년에 재건하였으나 다시 1943년에 일본인에 의해 훼철되었다. 해방 이후 1949년에 복원하고 위패와 영정을 봉안해 왔으며 퇴락한 것을 1975년에 해체하여 다시 복원하였다. 이어 1986년 포천 유림이 뜻으로 조국의 광복을 위해 헌신한 최면식을 서향하여 종향하였으며, 위패와 영정을 함께 봉안하였다. 1976년 8월 27일 경기도 기념물 제30호로 지정되었다.

[형태]

채산사는 화강암으로 축조된 장대석과 자연석으로 축조된 기단 위에 정면 3칸, 측면 2칸의 사우와 삼문이 있고 주위는 자연석 막돌로 축조하고 기와를 올린 담장이 둘러 있다.

[현황]

사우의 전면 중앙 추녀 밑에는 ‘茝山祠(채산사)’라고 쓴 현판이 걸려 있다. 사우 안쪽 중앙에는 최익현의 위패가 중앙 북단에 남향하여 모셔져 있다. 그리고 그 좌측에는 영정이 모셔져 있는데, 73세 때 그린 관복 차림의 전신 좌상이다. 규모는 가로 53㎝, 세로 98㎝이다. 서단에는 최면식의 영정 및 위패가 모셔져 있다. 영정의 규모는 가로 54㎝, 세로 92㎝이다.

현재 채산사에는 창건과 관련된 「창건 통문(創建通文)」을 비롯해 「개기제 축문(開基祭祝文)」·「상량문」·「봉안 고유문」, 방문록인 「도기(到記)」, 중수 관련 기록인 「헌성록(獻誠錄)」, 제향시 집사들의 명단인 「예원록(禮員錄)」과 「임원록」, 「청금록(靑衿錄)」, 「채산사 계안」 등이 봉안되어 있다. 채산사의 향사는 매년 9월 15일로 정하여 행한다. 매월 삭망[1일, 15일]에는 당직이 제주, 포를 놓고 분향한다.

[참고문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