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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정신 총동원 포천 연맹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000549
한자 國民精神總動員抱川聯盟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지역 경기도 포천시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김도형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설립 시기/일시 1938년연표보기 - 국민정신 총동원 포천 연맹 설립
개칭 시기/일시 1940년 - 국민총력조선연맹 포천지부로 기구 개편
관련 사항 시기/일시 1938년 06월 22일 - 국민정신 총동원 조선 연맹 발기인 총회 개최
성격 사회단체

[정의]

일제 강점기 경기도 포천 지역에 있었던 국민정신총동원조선연맹 소속 연맹.

[개설]

국민정신 총동원 조선 연맹은 일제 강점기 중일 전쟁 발발 직후 대륙 침략 전쟁 수행에 적극적으로 협력하기 위한 교화 운동을 목적으로 조선 총독부의 종용에 의해 조직된 친일 어용 단체이다. 국민정신 총동원 조선 연맹은 1938년 6월 22일 59개 단체와 개인 자격으로 56명의 인원이 참석한 가운데 발기인 총회가 개최되었다. 이중에서 조선 측 발기인으로는 국민 협회·계명 구락부·조선 교화 단체 연합회·조선 기독교 연합회·조선 문예회·조선 부인 문제 연구회·조선 불교 중앙 교무원·조선 상공 회의소·조선 장로회 총회·천도교 중앙 종리원·천주교 경성 교구·춘추회 등 25개 단체가 참여하였다. 김성수(金性洙)·김활란(金活蘭)·민규식(閔奎植)·박홍식·방응모(方應謨)·백관수(白寬洙)·윤덕영(尹德榮)·윤치호(尹致昊)·최린(崔麟)·한상용 등 27명은 개인 자격으로 참여하여 친일 행보를 보였다.

국민정신 총동원 조선 연맹은 7월 7일 중일 전쟁 도발 1년의 경과를 기념하여 경성 운동장에서 연맹 결성식을 갖고, 「동양 평화를 확보하여 팔굉일우(八紘一宇) 정신을 세계에 앙양하는 데 일치단결, 국민정신을 총동원하여 국책 수행에 협력한다」는 내용의 선언문을 채택하였다. 이와 함께 각지에서 지역 연맹이 조직되었으며 국민정신 총동원 포천 연맹도 이때 설립, 운영되었다. 그리고 같은 해 9월 22일 각 도 대표자 회의를 열어 실천 강령을 채택하고 전국적으로 활발한 활동을 전개하기 시작하였다.

[설립 목적]

국민정신 총동원 포천 연맹은 일제의 대륙 침략 정책에 필요한 인적·물적 자원을 조달하기 위해 조선 민중을 총동원하여 수탈하고자 했던 중앙 연맹의 목적에 부응하여 경기 북부 지역에서의 수탈과 ‘신민 교화’에 앞장서기 위해 결성되었다.

[변천]

국민정신 총동원 포천 연맹은 1938년에 설립되었다. 1940년 10월 국민정신 총동원 조선 연맹이 국민 총력 조선 연맹으로 기구를 개편하면서 국민 총력 조선 연맹 포천 지부로 변화되었다.

[주요 사업과 업무(활동 사항)]

국민정신 총동원 포천 연맹은 일제의 침략 전쟁에 대한 협력의 선전·선동 사업과 관련된 업무를 주로 수행하였다. 세부적으로는 중앙 연맹의 지도를 받아, 첫째 ‘황국 정신’ 고취를 통한 대륙 침략 전쟁에 대한 적극적인 참여 종용, 둘째 ‘내선 일체(內鮮一體)’ 이데올로기 완성, 셋째 비상시 ‘국민 생활’의 혁신, 넷째 전시 경제 정책에의 협력, 다섯째 ‘근로 보국’, 여섯째 ‘생업 보국’, 일곱째 ‘군인 원호’ 강화, 여덟째 ‘방공 및 방첩’ 활동, 아홉째 실천망 조직과 지도 철저 등의 사업과 관련된 업무를 수행하였다. 뿐만 아니라 창씨개명 강요, 헌금과 공출 강요, 폐품 수집 강요, 국어 강습회 강제 실시 등에 관한 활동도 전개하여 영향을 미치지 않는 분야가 거의 없었다.

[의의와 평가]

국민정신 총동원 포천 연맹은 중일 전쟁 발발 직후 대륙 침략 전쟁의 수행 역량을 결집시키기 위해 조선 민중들에 대한 강제 수탈과 함께 기만적인 어용 단체를 내세워 침략 전쟁에 대한 협력을 강요했던 1930년대 후반의 일제 식민지 정책의 단면을 살펴볼 수 있도록 해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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