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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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이익이 포천 옥동산에 살던 셋째 형 이서에 대하여 지은 전기. 「삼형옥동선생가전(三兄玉洞先生家傳)」은 성호(星湖) 이익(李瀷)[1681~1763]이 셋째 이복형 이서(李漵)[1662~1723]에 대하여 기록한 글이다. 호가 옥동 징사(玉洞徵士)이고, 자(字)가 징지(澄之)인 이서는 포천의 옥동산(玉洞山) 아래에서 살았으며, 남계(南溪) 박세채(朴世采)[1631~16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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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좌를 시조로 하는 경기도 포천시의 세거 성씨. 아산 이씨(牙山李氏)는 경주 이씨에서 분적된 성씨로, 시조 이주좌(李周佐)는 경주 이씨 시조 이거명(李居明)의 5세손이다. 이주좌는 고려 때 평장사를 역임한 이승훈(李承訓)의 둘째 아들로, 고려에서 형부 상서 판어사대사를 지냈고 사공(司空)에 추증되었으며, 아산으로 분적하였다고 한다. 이주좌의 후손 이서(李舒)가 원종 때 판위위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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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는 양반 사회였다. 따라서 양반은 사회의 지도적 위치에 있었다. 양반을 사대부(士大夫)라고도 하는데, 이는 사(士)와 대부(大夫)를 통칭한 말이다. 조선 후기 실학자 박지원(朴趾源)은 소설 「양반전」에서 “글을 읽는 사람을 선비[士]라 하며, 벼슬길에 나아가서 대부(大夫)가 된다.”라고 하였다. ‘선비’란 벼슬하지 않고 글을 읽으며 공부하는 사람이라고 풀이할 수 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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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포천시 가산면 우금 2리에 있는 조선 시대 반석. 『견성지(堅城誌)』에는 옥동 반석(玉洞盤石)에 대하여 “반석(盤石)에는 50명이 앉을 만하고 맑은 물이 흐르며 둘레에는 단풍과 전나무가 우거져 있다”라는 내용과 함께 백사(白沙) 이항복(李恒福)과 불정산인(彿頂山人) 홍지성(洪至誠)이 봄가을이 되면 옥동 반석을 찾아 노닐었음을 밝히고 있다. 또한 조선 후기 포천 출신의 서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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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포천에서 활동한 서예가. 본관은 여주(驪州). 자는 징지(徵之), 호는 옥동(玉洞)·옥금산인(玉琴散人). 증조할아버지는 좌찬성 이상의(李尙毅)이고, 할아버지는 이지안(李志安)이다. 아버지는 대사헌 이하진(李夏鎭)이다. 5형제 중 넷째이며, 성호 이익(李瀷)이 동생이다. 이서(李漵)[1662~?]는 1662년에 이하진의 넷째 아들로 태어났으나, 삼촌 이주진의 양자로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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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포천지역에 묘가 있는 조선 후기 무신. 본관은 청해(靑海). 자는 진지(鎭之), 호는 송계거사(松溪居士). 개국공신 이지란(李之蘭)의 후손으로, 아버지는 동지중추부사 이인기(李麟奇)이고, 어머니는 감찰 이경(李敬)의 딸인 전주 이씨(全州李氏), 부인은 우의정 정언신(鄭彦信)의 딸이다. 이중로(李重老)[1577~1624]는 일찍이 7세 때 어머니가 죽자 비록 어린 나이기는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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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포천 출신의 무신. 본관은 한양(漢陽). 한천 부원군(漢川府院君) 정온(鄭溫)의 9세손으로 아버지는 정제이다. 조득남(趙得男)[1594~1636]은 포천현에서 동쪽으로 20리[8㎞] 떨어진 설악산 아래 지금의 경기도 포천시 화현면 화성리에서 출생하고 성장하였다. 어려서부터 천성이 어질고 효성스러웠으며, 기골이 장대하고 용력(勇力)이 뛰어나 주위의 촉망을 받으며 자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