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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득남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001095
한자 趙得男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문무 관인
지역 경기도 포천시 화현면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김성환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594년연표보기 - 조득남 출생
활동 시기/일시 1621년 - 조득남 무과 급제
몰년 시기/일시 1636연표보기 - 조득남 사망
추모 시기/일시 1725년 - 조득남에게 충신 정려 내림
추모 시기/일시 2001년 5월 - 조득남 장군 정려를 가산면 마산리 둔지고개 마루에 복원 건립
출생지 조득남 출생지 - 경기도 포천시 화현면
묘소|단소 조득남 묘소 - 경기도 포천시
사당|배향지 조득남 장군 정려 - 경기도 포천시 가산면 마산리
성격 무신
성별
본관 한양(漢陽)
대표 관직 공조 정랑

[정의]

조선 후기 포천 출신의 무신.

[가계]

본관은 한양(漢陽). 한천 부원군(漢川府院君) 조온(鄭溫)의 9세손으로 아버지는 조정제이다.

[활동 사항]

조득남(趙得男)[1594~1636]은 포천현에서 동쪽으로 20리[8㎞] 떨어진 설악산 아래 지금의 경기도 포천시 화현면 화성리에서 출생하고 성장하였다. 어려서부터 천성이 어질고 효성스러웠으며, 기골이 장대하고 용력(勇力)이 뛰어나 주위의 촉망을 받으며 자랐다. 1621년(광해군 13) 무과에 급제하고 출사하여 병마만호(兵馬萬戶)에 이르렀다. 1627년(인조 5) 정묘호란이 일어나자 왕을 강화까지 호종하였고, 1630년(인조 8) 3월 유흥치(劉興治)가 의주에서 반란을 일으키자 이서(李曙)·정충신(鄭忠信)과 함께 출전하여 평정하였다. 같은 해 4월 명나라 장수 모문룡(毛文龍)이 가도(椵島)에 들어와 약탈을 자행하자 출동하여 진압하였다.

1636년(인조 14) 청나라 태종이 10만 대군을 이끌고 침입하는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왕을 호종하여 남한산성에 들어가 수어사 이시백(李時白) 장군 휘하에서 북문을 지키며 항쟁하여 청나라 군사를 무찌르니 그 수를 헤아릴 수 없었다. 이에 왕이 술을 하사하고 공조정랑을 제수하였다. 다음 날 다시 나가 목을 벤 적이 많았으나 많은 적병이 밀려와 화살이 모두 떨어지자 장검을 빼어 들고 적진에 뛰어 들어가 분투하다가 전사하였다.

[묘소]

병자호란이 끝난 후 경기도 포천시 운악산 아래 이장하였다.

[상훈과 추모]

조득남이 전사하였다는 소식을 접한 인조가 수포를 내려 수의를 짓게 하고 북문 아래에 임시로 매장하였다. 1725년(영조 1) 경연에서 신하들의 건백(建白)으로 충신 정려를 내렸으나 훼손되어 포천 시비와 유림, 후손들의 성의를 모아 2001년 5월 가산면 마산리 둔지 고개 마루에 복원 건립하였다. 유응부(兪應孚)·권종(權悰)과 함께 포천 지역 3충신으로 불린다.

[수정이력]
콘텐츠 수정이력
수정일 제목 내용
2023.11.16 오탈자 수정 [가계] 한천 부원군(漢川府院君) 정온(鄭溫)의 9세손으로 아버지는 정제이다. → 한천 부원군(漢川府院君) 조온(鄭溫)의 9세손으로 아버지는 조정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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