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650124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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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赤裳山城-西倉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
유형 | 작품/설화 |
지역 | 전라북도 무주군 적상면 사천리 서창 마을 |
집필자 | 이정훈 |
수록|간행 시기/일시 | 1992년 - 「적상산성과 서창」, 『내 고장 전설집』에 수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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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지명 | 서창 - 전라북도 무주군 적상면 사천리 서창 마을 |
성격 | 설화|지명 유래담 |
주요 등장 인물 | 병사들|가족들 |
모티프 유형 | 마을 유래|동기 감응 |
[정의]
전라북도 무주군 적상면 사천리에서 서창 마을과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개설]
「적상산성과 서창」은 병자호란 때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을 보관하고 있는 적상산의 사고(史庫)를 보호하기 위해 300여 명의 병사들이 상주하기 시작하면서 서창 마을이 시작되었다는 지명 유래담이다.
[채록/수집 상황]
1992년 김경석이 편찬하고 무주군에서 간행한 『내 고장 전설집』의 199쪽에 수록되어 있다. 채록 시기와 채록 장소는 명확하지 않다.
[내용]
무주군을 대표하는 적상산에는 『조선왕조실록』 사고가 있다. 병자호란을 당해 사고를 보호하기 위해 300여 명의 병사들이 상주하게 되었다. 이때 병사들을 위해 군량미를 보관할 창고를 전략적으로 두 개로 나눠지었다. 하나는 북창이며, 또 하나는 서창이다. 서창은 옛날 ‘용담문’이라 불리던 서문의 아랫마을로, 무주 적상산성을 지키는 병사들의 가족들이 하나둘씩 이주하면서 마을이 성립되어 지금도 ‘서창 마을’이라고 부른다. 옛날부터 창고가 있던 자리에 살게 되면 부자로 산다는 믿음을 지니고 있다. 서창 마을에서 적상산으로 가는 길목에는 최영 장군의 「적상산성 장도 바위」 전설이 전하고, 마을 어귀에는 장지현 장군의 묘가 있다.
[모티프 분석]
「적상산성과 서창」의 주요 모티프는 ‘마을 유래’, ‘동기 감응’ 등이다. 적상산은 무주를 대표하는 명산으로, 천혜 요새의 성격이 있어서 조선 왕조의 사고가 있었던 곳이다. 무주군 적상면 사천리 서창 마을은 사고를 지키던 병사들을 중심으로 그 가족들이 정착하면서 생긴 마을이다. 쌀 창고가 있던 자리에 터를 잡으면 부자로 산다는 믿음은 일종의 ‘동종 주술’ 모티프라고 할 수 있다. 실제 적상산 사고를 지키는 문제는 비용 문제에서 많은 문제점을 지니고 있었다. 무주현이 무주부로 승격하게 된 요인 중의 하나도 적상산의 사고 보호를 위한 것이었다. 군량미를 비축한 창고 터에 마을을 조성하면 만석꾼이 나온다는 믿음은 부자로 살고 싶은 민중적 소원이 반영된 것이자 수직 군사들의 애환을 위로하는 것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