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650064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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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全州李氏 |
영어공식명칭 | Jeonju Yissi|Jeonju Yi Clan |
이칭/별칭 | 완산 이씨 |
분야 | 성씨·인물/성씨·세거지 |
유형 | 성씨/성씨 |
지역 | 전라북도 무주군 무주읍 대차리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박대길 |
입향조 몰년 시기/일시 | 1504년 - 전주이씨 무주 입향조 이총 사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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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관 | 전주 - 전라북도 전주시 |
입향지 | 주계 서호 - 전라북도 무주군 무주읍 대차리 |
세거|집성지 | 덕곡 - 전라북도 무주군 안성면 덕산리 덕곡 마을 |
성씨 시조 | 이한(李翰) |
입향 시조 | 이총(李摠) |
[정의]
이한을 시조로 하고, 이총을 입향조로 하는 전라북도 무주군의 세거 성씨.
[연원]
전주이씨(全州李氏)는 전주를 본관으로 하는 한국의 대표적인 성씨의 하나로, 시조는 신라 문성왕(文聖王) 때 사공(司空)을 역임한 이한(李翰)이며, 이한의 21세손이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李成桂)[1335~1408]이다. 전주를 본관으로 하게 된 것은 이성계의 고조할아버지인 이안사(李安社) 이전까지 오랫동안 전주에 세거한 데 기인한다.
전주이씨에서 갈라진 대흥 이씨(大興李氏)와 영해 이씨(寧海李氏)가 있다. 대흥 이씨의 시조는 대흥군(大興君) 이연계(李連桂)이다. 대흥군은 고려 말기에 예문관 제학(藝文館提學)과 이부 상서(吏部尙書)를 지냈다. 대흥군은 이성계와 재종간 임에도 불구하고 불사이군의 절의를 굽히지 않고 끝까지 조선 개국을 반대하였다. 영해 이씨의 시조 이연동(李延東)은 완산 이씨 이립전(李立全)의 후손이라고 한다.
[입향 경위]
무주와 관련하여 가장 먼저 언급되는 전주이씨 인물은 무풍정(茂豊正) 이총(李摠)[?~1504]이다. 이총의 자는 백원(百源), 자호(自號)는 서호주인(西湖主人)·구로주인(鷗鷺主人)이다. 태종의 증손으로, 어린 시절에 무풍 부정(茂豊副正)에 제수되었다. 주계의 서호(西湖)[현 무주군 무주읍 대차리]에 집을 짓고 고기잡이배를 만들어, 항상 시인과 문사들을 초대하고 즐기면서 시를 지었다. 1504년(연산군 10) 갑자사화에 연루되어 효수형을 당하고, 1506년(중종 1) 무풍 도정(茂豊都正)에 추증되었으며, 1705년(숙종 31) 정려를 받았고, 1738년(영조 14) 무풍군(茂豊君)에 가증, 이조 판서에 증직되었다. 시호는 충민(忠愍)이다.
이심원(李深源)은 효령 대군 이보(李補)의 증손으로, 평성군(枰城君) 이위(李偉)의 아들이며, 1478년(성종 9) 주계 부정(朱溪副正)에 제수되어 성종의 신임을 받았다. 그러나 1504년(연산군 10) 갑자사화에 연루되어 두 아들과 함께 죽임을 당하였다. 1517년(중종 12)에 신원(伸寃)되었으며, 이심원의 충절을 기리는 정려문(旌閭門)이 세워지고, 흥록대부 주계군(興祿大夫朱溪君)으로 증직되었다.
그리고 임진왜란 때 김해 부사로 전주성 전투에서 전사한 이종인(李宗仁)의 10세손인 이백환(李伯煥)은 전라남도 창평에서 살다가 무주군 안성면 덕산리 덕곡 마을로 이사하여 살았으며, 이후 자손들이 정착하였다.
[현황]
2015년 무주군에서 간행한 『통계 연보』에 의하면, 무주군에 거주하는 전주이씨는 1,181명으로, 김해 김씨와 밀양 박씨 다음으로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