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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6500603
한자 場基里金海金氏門中古文書
영어공식명칭 Documents of the Kimhae Kim Family in Janggi-ri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문헌/문서
지역 전라북도 무주군 안성면 장기리
시대 조선/조선 후기,근대/개항기
집필자 김철배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작성 시기/일시 1722년연표보기~1905년연표보기 - 장기리 김해김씨 문중 고문서 작성 시작·완료
발급 시기/일시 1722년~1905년 - 장기리 김해김씨 문중 고문서 발급 시작·완료
소장처 김해김씨 문중 - 전라북도 무주군 안성면 장기리 지도보기
성격 고문서
관련 인물 김이항|김정혁|김의규|김영식|김현태
용도 교지

[정의]

조선 후기와 개항기에 작성된 전라북도 무주군 안성면 장기리 김해김씨 문중 소장 고문서.

[개설]

무주군 안성면 장기리에는 옛적부터 장터가 있어 진안(鎭安), 장수(長水), 함양(咸陽) 등지의 장꾼들이 문물을 교역하던 곳이다. 본래 금산군에 속했는데 1674년 무주 도호부 승격 때 무주에 편입되어 이안면에 속했으며, 1914년 안성면 소재지가 되었다. 그 당시 장기리에는 산미촌(中山), 비들목(鳩項), 대밭골(竹田), 배냉기(梨木), 이화동(梨花洞) 등이 속했다. ‘장기’라는 지명을 붙이게 된 안성 장터는 현재 하천으로 변해 버린 효자촌(孝子村) 앞 개울 건너에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1917년 대홍수를 당해 안성 장터가 모두 떠내려가는 참상을 당했고, 장터는 하천으로 변해 버려 쓸모 없는 땅이 되고 말았다. 이에 따라 황무지였던 비들목 건너편 빈들[곽평(廓坪)]에 면사무소를 비롯하여 각급 기관을 신축하고 장옥(場屋)을 세우게 되었다. 그러자 사람들이 몰려들고 인가(人家)가 생기면서 마을이 형성되어 오늘날의 신촌(新村)과 시장(市場)이 되었다고 한다.

[제작 발급 경위]

장기리 김해김씨 문중 고문서(場基里金海金氏門中古文書)에 속한 교지(敎旨), 칙령(勅令), 임명장(任命狀) 등은 왕이나 황제의 명으로 이조(吏曹)에서 발급한 문서이다.

[형태]

교지 6점으로 모두 필사본이며, 규격은 각 고문서의 양식에 따라 다양하다. 1680년 발급한 김이항(金爾恒) 교지 85×102㎝, 1722년 발급한 김정혁(金廷爀) 교지 69×88㎝, 1829년 발급한 김의규(金懿圭) 교지 31×49㎝, 1829년 발급한 김의규 교지 71×96㎝, 1902년 발급한 김영식(金永植) 칙령 58×39㎝, 1905년 발급한 김현태(金顯泰) 교지 59×39㎝ 등이다.

[구성/내용]

1680년 부사과(副司果) 김이항의 무과 급제 교지를 시작으로, 1722년 한량(閑良) 김정혁의 무과 급제 교지, 1829년 김의규에게 발급한 교지, 1829년 부사과 김의규의 무과 급제 교지 등이 있고, 칙령은 1902년 고종의 명에 따라 80세 이후 기로소(耆老所)에 든 사서인(士庶人)에게 가자(加資)한다는 원칙 아래 김영식을 정3품 통정대부(通政大夫)로 임명한 내용이다. 1905년에 발급된 임명장은 궁내부(宮內府)에서 종사랑(從仕郞) 김현태를 분충의(分忠義)에 임명하는 교지이다.

[의의와 평가]

무주군 안성면에 오랫동안 세거해 왔던 김해김씨는 대를 이어 무과에 급제하였고, 그 급제 교지를 그대로 소장하고 있어 무주 향토사 연구에 매우 귀중한 시각 자료가 된다. 개인이 소장한 고문서의 종류와 양이 다소 적지만 향후 다양한 층위의 문서들이 발견되면 가치가 더욱 높아질 것으로 여겨진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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