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650046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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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安國寺淸雲堂浮屠 |
영어공식명칭 | Sarira Pagoda of Cheongundang at Anguksa Temple |
분야 | 종교/불교 |
유형 | 유적/탑과 부도 |
지역 | 전라북도 무주군 적상면 산성로 1050[괴목리 1602]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진정환 |
[정의]
전라북도 무주군 적상면 괴목리 안국사에 있는 조선 후기 승려 청운당의 사리탑과 봉골탑.
[개설]
승탑(僧塔)은 부도(浮屠)라고도 부르며, 고승(高僧)이 입적(入寂)한 후 사리(舍利)나 유골(遺骨)을 봉안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승탑은 선종(禪宗)이 유입된 이후인 9세기 중엽부터 본격적으로 만들어졌다. 이 시기 승탑은 실상사 증각 대사 응료탑(實相寺證覺大師凝寥塔)과 같이 팔각 원당형(八角圓堂形)이 주를 이룬다. 고려 시대 이후에는 법천사 지광 국사 현묘탑(法泉寺智光國師玄妙塔)과 같이 평면이 사각형인 것이나, 범종 모양과 비슷한 형태의 석종형(石鐘形) 승탑이 등장하여 팔각 원당형 승탑과 함께 변화 발전한다.
[건립 경위]
안국사 청운당 부도(安國寺淸雲堂浮屠)는 1717년(숙종 43) 청운당이 입적하자 다비(茶毘)한 후 사리를 추려 사리탑(舍利塔)을 조성하고, 유골을 봉안하기 위해 봉골탑(奉骨塔)을 별도로 조성한 것으로 추정된다.
[위치]
수몰된 안국사 터에 있던 안국사 청운당 사리탑(安國寺淸雲堂舍利塔)과 안국사 청운당 봉골탑(安國寺淸雲堂奉骨塔) 두 기를 현 안국사 부도군으로 옮겨 복원하였다. 안국사 청운당 사리탑 왼편에 안국사 청운당 봉골탑이 있다.
[형태]
안국사 청운당 봉골탑은 전형적인 석종형 승탑이지만, 안국사 청운당 사리탑은 서까래와 부연·기왓골과 우동이 표현된 팔각의 옥개석(屋蓋石)을 올린 특이한 형태이다. 안국사 청운당 사리탑은 높이가 125㎝이다. 지대석(址臺石)은 매몰되어 있으며, 탑신(塔身)과 팔각형 옥개석으로 구성되어 있다. 탑신에는 아무런 조각이 없다. 탑신과 별석으로 조성된 옥개석은 서까래와 부연을 갖춘 겹처마 형태이고, 우동마루와 기왓골이 표현될 정도로 목조 건축 양식을 충실히 반영하고 있다. 옥개석 상부에는 두 개의 단을 두고 다시 그 위에 연주 무늬를 둘렀으며, 연꽃 봉오리 형태의 보주(寶珠)를 올려놓았다. 안국사 청운당 봉골탑은 높이가 120㎝이다. 네모난 대좌와 석종형 탑신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대좌 윗면에는 평면이 원형인 탑신에 맞춰 원형 연꽃잎 무늬가 새겨져 있다. 탑신 상부에는 여의두 무늬가 새겨져 있다.
[금석문]
안국사 청운당 사리탑 탑신에는 좌서로 '청운당 사리탑 강희 오십육년(淸雲堂舍利塔康熙五十六年)'이라고 새겨져 있다. 1717년 청운당의 사리를 봉안한 승탑임을 알 수 있다. 안국사 청운당 봉골탑에는 '청운당 봉골탑 강희 오십육년(淸雲堂奉骨塔康熙五十六年)'이라고 새겨져 있다.
[의의와 평가]
안국사 청운당 사리탑과 안국사 청운당 봉골탑은 특이하게도 승려의 사리와 유골을 각각 보관하기 위해 별도의 승탑을 조성한 사례로, 조선 후기 승탑 조영사에서 매우 주목되는 승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