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70050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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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四溟堂 惟政 敎牒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기록 유산 |
유형 | 문헌/문서 |
지역 | 경상남도 밀양시 단장면 표충로 1338[구천리 23]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김영우 |
작성 시기/일시 | 1593년 9월 - 사명당 유정 교첩 발급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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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 지정 일시 | 2017년 4월 13일 - 사명당 유정 교첩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634호 지정 |
관련 사항 시기/일시 | 2020년 11월 28일 - 사명당 유정 교첩 김상자가 표충사에 기증 |
특기 사항 시기/일시 | 2021년 6월 29일 - 사명당 유정 교첩 「문화재보호법시행령」 개정에 따라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지정 번호 삭제 |
소장처 | 표충사 - 경상남도 밀양시 단장면 표충로 1338[구천리 23] |
성격 | 교첩 |
관련 인물 | 사명대사 유정 |
용도 | 임명장 |
발급자 | 비변사 |
수급자 | 사명대사 유정 |
문화재 지정 번호 |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634호 |
[정의]
경상남도 밀양시 단장면 구천리 표충사에 소장되어 있는 임진왜란 당시 사명대사에게 비변사에서 발급한 임명장.
[개설]
2017년 4월 13일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634호로 지정되었다. 2020년 개인 소장자 김상자가 표충사에 기증하여 현재는 표충사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2021년 6월 29일 「문화재보호법시행령」 개정에 따라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지정 번호가 삭제되었다.
사명당(四溟堂)은 경상남도 밀양 출신으로 속성은 풍천임씨(豐川任氏)이고, 속명은 유정(惟政) 또는 응규(應奎)이다. 자는 이환(離幻)이며 호는 종봉(鐘峰)·송운(松雲)·사명(四溟), 시호는 자통홍제존자(慈通弘濟尊者)이다. 1559년 경상북도 김천 직지사로 출가하고, 3년 뒤 승과에 합격하였다. 보현사로 서산대사(西山大師) 휴정(休靜)을 찾아가 제자가 되었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금강산에 있던 사명당은 강원도 고성의 적진으로 들어가 적장을 회유하여 영동9군을 구하였고, 이어 서산대사의 격문을 받고 의승병(義僧兵)을 일으켰다. 의승도대장(義僧都大將)으로 1593년 1월의 평양성 탈환 작전에 참가, 서울 부근 삼각산 노원평과 우관동 전투에서 공을 세웠다. 서산대사가 고령이라 사명당이 임진왜란의 전 기간 동안 승병을 통솔하였다. 가토 기요마사[加藤清正]와의 4차례 협상 회담에 참여하였으며, 공적을 인정받아 가선대부동지중추부사의 벼슬을 하사 받았다. 1604년 일본과 강화를 맺기 위한 사신으로 파견되었고, 1605년 포로로 잡혀갔던 조선인 3,000여 명을 데리고 귀국하였다. 1610년 8월 입적했다.
[제작 발급 경위]
사명당 유정 교첩은 임진왜란 당시 비변사에서 사명당을 경상도 승군을 총괄하는 총섭(總攝)으로 임명하고 발급한 사령장이다.
[형태]
사명당 유정 교첩은 1장 짜리의 문서이다.
[구성/내용]
『선조실록』 74권, 선조 29년 4월17일 계축 6번째 기사에는 비변사에서 선조에게 경상좌도와 경상우도에 각각 총섭을 선출하여 일을 분장시킬 것을 건의하는 기록이 있다.1596년 명나라 만력(萬曆) 24년 비변사가 아뢰기를, “승장(僧將) 유정이 지금 경상도에서 승군(僧軍)을 통솔하고 요새를 설치해 방비하는 등 모든 일을 조치하고 있는데, 지방이 넓고 또 한 총섭(總攝)으로는 승군을 징발함에 어려운 일이 많다고 합니다. 좌도와 우도에 각각 총섭을 선출하여 승군을 징발하는 일을 분장시키는 것이 어떠하겠습니까 하니, 상이 따랐다.”라는 기록이 있다.
『선조실록』의 기록을 통하여 1596년 경상도 총섭으로 활약하고 있던 사명당에게 많은 임무가 주어졌음을 알 수 있는데, 특히 경상도 지역의 수호를 위하여 더 많은 승병을 징발하고자 하는 일도 당시 경상도 총섭인 사명당이 모두 맡았던 것을 알 수 있는 기록이다.
사명당 유정 교첩은 『선조실록』보다 앞서 사명당이 경상도 총섭으로 임명된 것을 알 수 있는 최초의 기록인 비변사 문서이다. 문서의 발행은 1593년 9월이지만 임명한 것은 1593년 8월 초3일로 이는 전투가 매우 치열하게 진행되던 긴급한 상황에서 비변사가 먼저 임명한 뒤 후에 문서를 발급한 것이다.
[의의와 평가]
사명당 유정 교첩은 교첩은 임진왜란 당시 경상도 지역에서의 사명당의 승병 활동을 실질적으로 증거하는 역사적 자료이다. 임진왜란 당시에 발급되었다는 것과 임명장을 발급한 곳이 비변사였다는 점, 임명 당시 사명당의 법계가 대선이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는 문서로서 사명당 유정 교첩은 당시 상황을 짐작하게 하는 귀중한 자료로 평가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