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30089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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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隱蹟寺 |
영어공식명칭 | Eunjeog Temple |
분야 | 종교/불교,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기관 단체/사찰 |
지역 | 전라남도 해남군 마산면 은적사길 404[장촌리 66] |
시대 | 고려/고려 전기,고려/고려 후기,조선/조선 전기,조선/조선 후기,근대/개항기,근대/일제 강점기,현대/현대 |
집필자 | 황호균 |
중수|중창 시기/일시 | 1856년 - 은적사 준활대사(俊活大師)가 중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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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사항 시기/일시 | 1981년 10월 20일 - 은적사철조비로자나불좌상 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86호로 지정 |
최초 건립지 | 다보사 - 전라남도 해남군 마산면 장촌리 |
현 소재지 | 은적사 - 전라남도 해남군 마산면 은적사길 404[장촌리 66] |
성격 | 사찰 |
전화 | 061-532-5131 |
[정의]
전라남도 해남군 마산면 장촌리에 있는 대한불교조계종 제22교구 본사 대흥사 소속 사찰.
[건립 경위 및 변천]
은적사가 있는 이곳은 본래 다보사(多寶寺)라는 절이 있었고, 부속 암자로 은적암(隱寂庵)이 있었다. 19세기 중반 무렵에 다보사가 폐허가 된 뒤, 은적사로 이름이 바뀌었다고 한다. 다보사는 신라 때인 560년(진흥왕 21)에 창건되었다고 전해지지만 문헌 기록이 없어 뒷받침되지는 못하고 있다. 조선시대 사료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과 『범우고』에 이름이 보여 적어도 19세기 중반까지는 다보사가 존재하고 있었다고 볼 수 있다. 지금은 다보사 주변에는 절터만 남아 있지만, 절 아래쪽으로 사하촌(寺下村)이 형성되었다는 것으로 보아 다보사가 큰 규모의 사찰이었음을 알 수 있다. 은적사의 역사에 대해서는 범해각안[1820~1896]이 1883년에 은적사의 연기(緣起)와 연혁(沿革)을 정리한 「은적사사적(隱跡寺事蹟)」[34×24㎝, 80면]이 참고가 된다. 미국 하버드대학교 연경도서관에 보관되어 있는 것을 1967년에 이기백 교수가 사진을 영인하여 국내에 공개하였다. 공개된 내용에서 「사내고금문적(寺內古今文蹟)」 부분은 유장렬(柳漳烈)이 절의 중수에 관해 여러 사람이 쓴 기록을 모은 것으로, 「사내고금문적」에 인용된 윤기형(尹機衡)의 「은적암삼중창기(隱跡庵三重創記)」에 따르면 은적사는 “300년 전 덕륭(德隆)이 창건하고 도선(道詵)이 중창하였다.”라고 되어 있다. 하지만 이 기록을 그대로 믿을 수는 없다. 그 밖에 1856년(철종 7)에 김세신(金世臣)이 짓고 쓴 「은적암약사전중건기(隱寂庵藥師殿重建記)」와 1872년(고종 9)에 김익로(金益魯)가 지은 「은적사산신각창건문(隱寂寺山神閣創建文)」 같은 절의 발자취를 전하는 현판이 있다. 은적사에 봉안되어 있는 은적사 철조비로자나불좌상[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86호]으로 미루어 보면 적어도 고려 초기에는 창건이 되었다고 볼 수 있다.
조선시대 전기까지는 기록이 없으나, 조선 후기에 들어와서 여러 차례 중창 불사가 이루어지고 대흥사 승려들이 주석하여 활기를 띠게 된다. 은적사는 1592년(선조 25)의 임진왜란 때 병화로 응진각만 남고 거의 폐허가 되었다. 1648년(인조 26)에는 큰 석탑과 건물을 세워 면모를 일신하였다. 1708년(숙종 34)에 화주이며, 세속 별좌인 희간(熙侃) 등이 범종을 조성하였다. 하지만 범종은 광복 뒤 대흥사로 옮기는 도중에 분실하였다고 한다. 1728년(영조 4)에 약사전에 모신 철불상이 땀을 흘리는 신기하고 기이한 일이 일어났다. 1791년부터 1793년에 봉총(奉總)이 화주가 되어 제3중창 불사가 이루어졌다. 1795년(정조 19)부터 1796년에 기와를 바꾸는 등 약사전을 중수하였다. 1839년(헌종 5)에 노전이 낡아 기울어지자 단월 최순국(崔舜國)이 시주하였다. 1856년(철종 7)에 승려 준활(俊活)이 중심이 되어 약사전을 중건하였다. 1858년에 제4중창 불사가 이루어졌다. 1865년(고종 2)에 지장탱화를 조성해서 봉안했다. 1872년에 해남의 수사(秀士) 김태희(金台禧) 형제가 재산을 월여범인(月如梵寅)[1824~?]에 기부하여 산신각을 지었다. 김태희 형제는 산신각을 지어 생전에는 부모를 위하고, 사후에는 영혼을 천도하기 위하여 지극한 정성으로 축복하였다 한다. 1970년 5월에 범종을 조성하였다.
[현황(조직, 시설 현황 포함)]
은적사의 승려는 2명이고, 신도 수는 3,000여 명이다. 사찰 내에는 약사전, 비로전, 지장전, 삼성각, 나한전, 요사채 등의 전각이 있다. 정기 법회는 매월 초하루에 법회가 있다. 신도들은 300여 명이 신도회를 구성하여 사찰의 불사와 법회 지원 봉사를 하고 있다. 은적사가 자리한 곳은 골짜기가 길고 그윽하여 풍경이 아름다우며, 옛부터 은적사의 저녁 종소리를 해남팔경의 하나로 꼽는다.
[관련 문화재]
2018년 현재 문화재로 지정된 유물은 약사전 뒤로 신축한 비로전에 은적사 철조비로자나불좌상[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86호]이 봉안되어 있다. 절 마당에는 장촌리 남계마을에서 이전해 온 고려 후기 장촌리사지 삼층석탑이 있다. 이 밖에 약사전 편액[1856년 추정, 창암 이삼만], 은적암약사전중건기 현판(隱寂庵藥師殿重建記)[1856년], 약사전중건시주제원록 현판(藥師殿重建施主諸員錄)[1856년], 대시주최순국지영각 현판(大施主崔蕣國之影閣)[1856년 추정], 은적사산신각창건문 현판(隱寂寺山神閣創建文)[1872년 추정], 지장탱화[1865년, 대흥사 보관], 헌답기 현판(獻畓記)[1939년]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