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340046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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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河東綠茶 |
영어의미역 | Hadong Green Tea |
분야 | 정치·경제·사회/경제·산업 |
유형 | 특산물/특산물 |
지역 | 경상남도 하동군 하동읍 읍내리 180-3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김지영 |
관련 사항 시기/일시 | 2003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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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산지 | 경상남도 하동군 화개면 |
성격 | 식물|차 |
용도 | 음용 |
[정의]
경상남도 하동군 화개면 일대에서 주로 생산되는 차.
[개설]
녹차는 차나무 잎을 따서 발효시키지 않은 찻잎을 사용해 만든 차다. 우리나라에서 자라는 소엽종의 차나무는 연평균 기온이 약 10℃ 이상으로, 온난하고 연평균 강수량이 1,500㎜ 이상인 다습한 지역에서 잘 자란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대륙성 기후로 겨울에는 혹한이 심하고 일교차가 매우 커서, 차나무가 자연 상태로 자랄 수 있는 북방 한계 위도가 북위 약 33.35도이다. 때문에 현재 우리나라의 차 재배지는 전라북도 김제, 옥구, 남원과 경상남도 함양, 밀양, 울산의 남쪽 지역 정도이며, 대부분의 차가 경상남도와 전라남도, 그리고 제주도에서 생산되고 있다.
[연원 및 변천]
하동은 우리나라 차의 시배지이며, 차가 주요 토산물이었고, 또 그 질도 매우 우수했음이 여러 문헌 기록에 보이고 있다. 우선 『삼국사기(三國史記)』에 의하면 “신라 시대인 828년(흥덕왕 3) 당나라에서 돌아온 사신 대렴공이 차 종자를 가지고 오자, 왕이 지리산에 심게 하였다. 차는 선덕여왕 때부터 있었지만 이때에 이르러 성하였다”라고 하였다. 이로 미루어 신라에는 7세기 전반인 선덕여왕[재위 632~647] 이전에 이미 차가 있었고, 흥덕왕 때에는 차를 마시는 풍속이 성행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16세기 전반에 편찬된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는 흥덕왕의 명에 의해 지리산에 차를 심었다는 사실이 진주목 토산조에 기록되어 있다. 이 두 기록을 통하여 진주목에 속하였던 지리산 부근, 즉 하동이 차의 시배지로 이미 신라 시대부터 알려져 있었으며, 지리지 토산조에 기록될 만큼 대표적 차 산지였음을 알 수 있다.
고려 시대에는 이규보(李奎報)[1168~1241]가 화개를 찾아와 차를 맛보기도 했다. 13세기 전반 화개는 당시의 대표적인 차 산지로 알려져 2월 말까지 조정에 차를 진상하였는데, 차 공납으로 인한 백성들의 고통이 매우 심하였다 한다. 조선 전기의 문신으로 경상도관찰사를 역임한 하연(河演)[1376~1453]은 판서 민의생(閔義生)이 중국으로 사행을 떠날 때 화개차를 주면서 「민의생 판서가 중국에 사신감에 화개차로 이별하며 짓다」라는 제목의 시를 썼다. 그 시를 보면, "화개골의 차 좋다고 익히 들었는데/ 맑기는 양선산(陽羨山) 차 같고/ 차 향기 중하기는 금옥 같다오/ 이 차(茶) 마음 담아 노자로 보내네"라 하였다. 중국으로 사행을 떠나는 사신의 행장에까지 화개차가 들어 있었으니, 당시 화개차의 명성을 짐작할 수 있다.
차와 선을 같다고 이야기 한 초의 선사(草衣禪師 ) 의순(意徇)[1786~1866]은 『동다송(東茶頌)』을 지어 우리나라 차를 예찬했는데, 특히 화개차에 대해서 많이 언급하면서, “화개동의 차밭은 골짜기와 난석(欄石)을 모두 갖추고 있어 여기에서 생산되는 화개차의 품질은 당연히 좋은 것이다.”라고 칭송하며, 화개차의 우수성을 노래하였다.
[제조(생산) 방법 및 특징]
하동녹차는 찻잎 따기-덖기-비비기-건조-끝 덖기-선별 및 포장의 과정을 거쳐 만들어진다. 찻잎은 보통 4월 하순부터 5월 하순까지 따며, 따는 시기에 따라 우전, 세작, 중작, 대작으로 분류하며 홍차나 티백은 그 이후로 넘어간다. 찻잎은 새순이 돋아나는 여린 잎 한두 마디를 따며 밤이슬을 흠뻑 머금은 오전에 따는 것이 최고요, 한낮에 따는 것은 그 다음이며, 흐린 날씨나 비가 올 때는 따지 않는다.
그날 따온 잎을 멍석에 깔아놓고 큰 잎, 묵은 잎, 줄기, 부스러기를 가려낸 다음, 솥이 잘 달구어지기를 기다렸다가 적당한 양을 넣고 빠른 시간에 덖는다. 찻잎을 덖으면, 맛이 구수하고 향기가 좋아질 뿐만 아니라, 찻잎의 수분을 제거함으로써 부패되거나 변질되는 것을 방지하고, 차의 성분을 오랫동안 보존하면서 운반과 보관이 편리한 이점이 있다.
잘 덖은 찻잎은 열기를 없애고 차의 성분이 배어들도록 멍석에서 비빈다. 비비기 작업은 이 찻잎 표면의 막을 제거하거나 상처를 내어 물과 차가 융합할 때 차의 성분이 쉽게 물에 우러나게 하기 위한 것이다. 또한 찻잎의 즙액을 세포 밖으로 밀어내어 건조를 촉진시키는 작용도 한다. 찻잎의 덖기와 비비기는 불[온도]을 조절해 가며 수차례 반복한다.
건조의 앞 수순으로 멍석에서 비빈 찻잎을 서로 낱순이 되도록 분리시킨다. 전통적인 방법으로 차를 건조할 때는, 온돌방에서 한지를 깔고 말리거나 선반에서 자연 건조한다. 마지막 열처리 과정으로, 비교적 낮은 온도에서 충분히 덖어 마무리하는 것이 좋으며 이 과정이 차 맛에 큰 영향을 미친다. 덖기가 잘 이루어지면 차의 빛깔과 향기가 아름답고, 차의 신비로움과 싱그러운 맛을 겸한 오묘함이 나타난다. 차를 선별, 포장할 때는 전통적인 방법으로 키를 이용하여 부스러기를 골라내고 좋은 찻잎을 골라낸다.
하동군의 주요 차 재배 지역은 섬진강과 그 지류인 화개천에 연접해 있어 안개가 많고 다습하다. 또한 차 생산 시기에는 밤낮의 기온차가 커 차나무를 재배하는 데 최적의 환경을 갖추고 있다. 또한 토양은 약산성으로 수분이 충분하며 자갈이 많은 사력질 토양으로 차나무 생육에 좋아 차나무 재배에 알맞은 토질을 갖고 있다. 이러한 지리적 요인을 활용하여 2003년에는 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에서 지정하는 지리적 표시제에 하동녹차를 등록하였다.
하동녹차는 다른 지역에서 생산되는 녹차보다 성분, 맛과 품질 등 모든 면에서 우수하며, 특히 오래전부터 내려오는 ‘덖음’ 기술이 특기할 만하다. 이를 활용하여 고급 녹차를 생산함으로써 보급형 녹차를 생산하는 다른 지역과의 차별화를 내세우고 있다. 실제로 우전, 세작, 중작, 대작 등 고급 녹차의 생산량이 전체 생산량의 95%를 차지하는 반면, 티백과 같은 보급 녹차의 생산량은 5%에 불과하다.
[현황(관련 사업 포함)]
야생 다원에서 생산되는 하동녹차는 차 재배에 유리한 기후 조건과 다른 지역과의 차별화를 통한 세계적 명품화를 추진하고 있다. 하동녹차의 명품화를 위해 하동녹차연구소, 차문화센터, 녹차체험관, 녹차 산업 전담 부서[지역특화산업기획단]가 설치되어 있다.
특히 하동 야생차 문화 축제는 지역에 국한된 문화 축제가 아닌 전 세계적인 축제로 발전하여 하동을 세계적인 녹차 산업의 중심지로 부각시켰다. 우리나라 차의 시배지이며 차 문화의 기원지로서 하동의 이미지를 홍보하고 관광객들에게 녹차와 관련된 정보와 체험 프로그램을 제공하고 있다. 또한 녹차 생산 과정[찻잎 따기, 덖음]을 관광객이 직접 체험할 수 있도록 녹차 체험 마을을 조성하는 등 대중과 소통하려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하동군은 차 시배지이면서 ‘야생차의 고장’이라는 명성을 가지고 있는 곳으로, 녹차 생산이 농가의 주 소득원이 되고 있다. 2008년 기준으로 농가 수 2,100호[전국 대비 약 45%], 재배 면적 1,048㏊[전국 대비 약 23%], 생산량 2,230톤, 소득원은 261억 원이다. 하동녹차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수입 개방 대비 차 산업 경쟁력 강화 방안으로 친환경 유기농다원을 조성하였고, 생산비 절감 방안으로 하동군에서 채엽 장비를 지원하였다. 또한 생산성 향상을 위하여 관수 시설, 잡초 방제 부직포, 모노레일 설치를 지원하였다.
생엽에서 제품까지 안정성 확보 및 고품질 녹차 생산을 위해 하동녹차연구소, 농산물품질관리원과 협약을 체결하여 녹차 생산 전필지 유해 물질 안정성 검사를 실시하여 유해 물질 불검출의 성과를 거두었다. 녹차 참숭어, 녹차 냉면, 녹차 소주 등 녹차를 이용한 먹을거리도 다양하게 생산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