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주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8100706
한자 金基柱
영어공식명칭 Kim Giju
이칭/별칭 기유(其有)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인물/문무 관인
지역 경상북도 경산시 삼남동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감병훈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808년연표보기 - 김기주 출생
활동 시기/일시 1863년 - 김기주 오위장 임명
활동 시기/일시 1863년 - 김기주 경산향교에 논 기부
몰년 시기/일시 1869년연표보기 - 김기주 사망
추모 시기/일시 1869년 - 오위장김공기주유공비 건립
거주|이주지 김기주 거주지 - 경상북도 경산시
성격 선비
성별
본관 김해
대표 관직 오위장

[정의]

조선 후기 경상북도 경산 출신의 선비.

[개설]

김기주(金基柱)[1808~1869]는 1863년(철종 14) 큰 흉년이 들자, 자신의 논을 경산향교(慶山鄕校)에 기부하고 고을 사람들을 구휼하였다.

[가계]

김기주의 본관은 김해(金海), 자는 기유(其有)이다. 아버지는 김득주(金得柱), 어머니는 청주 한씨(淸州韓氏)이다.

[활동 사항]

김기주는 1808년(순조 8) 경상도 경산현 삼남동[지금의 경상북도 경산시 삼남동]에서 태어났다. 김기주의 집안은 부유하여 어릴 때부터 학업에 열중할 수 있는 환경이었다. 이로 인해 1863년(철종 14)에는 오위장(五衛將)으로 임명되기도 하였다. 이 무렵 경산 지역에 큰 흉년이 들자 대부분의 사람들이 굶주리고 힘들어졌다. 이를 불쌍히 여긴 김기주는 자신의 논 30두락(斗落)을 경산향교에 기부하여, 경산현 관내 5개 면 사람들을 구제하였다.

[상훈과 추모]

김기주는 사후 구휼의 공덕이 조정에 보고되어 가선대부(嘉善大夫)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에 증직되었다. 1869년(고종 6) 고을 사람들이 김기주의 덕을 기리기 위해 ‘오위장김공기주유공비(五衛將金公其柱有功碑)’를 세웠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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