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10066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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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朴纘祖 |
영어공식명칭 | Park Chanjo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경상북도 경산시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이광우 |
[정의]
조선 전기 경상북도 경산 출신의 문신.
[개설]
박찬조(朴纘祖)[1399~?]는 문과 급제 후 성균관 주부(成均館主簿)·형조 좌랑(刑曹佐郎)·평해 군수(平海郡守)·종부시 정(宗簿寺正) 등을 역임하였으며, 1455년(세조 1) 좌익원종공신(佐翼原從功臣)에 녹훈되었다.
[가계]
박찬조의 본관은 밀양(密陽)이다. 아버지는 단성현감(丹城縣監)을 지낸 박울(朴蔚), 어머니는 예조판서(禮曹判書)를 지낸 이거(李琚)의 딸 인천 이씨(仁川李氏), 할아버지는 지한주사(知漢州事)를 지낸 박해(朴晐), 증조할아버지는 밀직부원군(密直府院君) 박중미(朴中美)이며, 부인은 영천 최씨(永川崔氏)이다. 박해가 고려 말 혼란을 피해 청주 계림촌(鷄林村)에서 경산 내매촌(內梅村)[지금의 대구광역시 수성구 신매동]에 정착하면서 경산 지역과 인연을 맺게 되었으나, 박찬조 대에 다시 밀양으로 이거한 것으로 보인다.
[활동 사항]
박찬조는 생원(生員)으로서 1447년(세종 29) 문과에 응시하여, 49세의 나이로 급제하였다. 이후 예문관(藝文館)의 한림(翰林)으로 있으면서 실록 편찬에 참여했다. 1454년(단종 2) 궁궐 안 여러 기관의 관료들이 기녀(妓女)를 불러 회음(會飮)한 사건이 발생하였는데, 당시 성균관 주부였던 박찬조도 포함되어 있었다.
1455년(세조 1) 세조의 왕위 등극을 도와 좌익원종공신 2등에 녹훈되었다. 1458년(세조 4) 성균직강(成均直講)으로 있으면서 평안도 백성의 월경 행위 금단과 모든 백성들에 대한 금주(禁酒)를 건의하였다. 같은 해 사간원 좌헌납(司諫院左獻納)에 올랐다. 이후 봉상시부정(奉常寺副正)·제용감 정(濟用監正)·사재감 정(司宰監正)을 거쳐 1487년(성종 18) 종부시 정에 제수되었다.
[묘소]
박찬조의 묘소는 경상남도 밀양시 하남읍 귀명리에 있다.
[상훈과 추모]
박찬조는 1455년(세조 1) 좌익원종공신(佐翼原從功臣)에 녹훈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