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10066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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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朴晐 |
영어공식명칭 | Park Hae |
이칭/별칭 | 귀림(歸林)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경상북도 경산시 |
시대 | 고려/고려 후기 |
집필자 | 위은숙 |
[정의]
고려 후기 경상북도 경산 지역에 정착한 문신.
[개설]
박해(朴晐)[1347~?]는 1377년(우왕 3) 문과에 급제하였으며, 경산 지역에 은둔하였다.
[가계]
박해의 본관은 밀양(密陽), 호는 귀림(歸林)이다. 아버지는 밀직부원군(密直府院君)을 지낸 박중미(朴仲美), 외할아버지는 박문유(朴文有)이다. 부인은 경산 전씨(慶山全氏)로 전의룡(全義龍)의 딸이다. 처남이 경산 출신의 문신 문평공(文平公) 전백영(全伯英)이다.
[활동 사항]
박해는 산원(筭員)을 거쳐 1377년 문과에 급제한 후 판한주사(判韓州事)와 대사헌(大司憲)을 지냈다. 청주(淸州)에 거주하다가 처가가 있는 경산현 내매동(內梅洞)[지금의 대구광역시 수성구 신매동 일대]으로 이거하였다. 문장과 덕행으로 존경받았으며, 문평공 전백영, 대호군(大護軍) 이거(李琚), 양정공(襄靖公) 박령(朴齡)과 교유하였다.
[상훈과 추모]
박해의 후손들이 건립한 재사(齋舍)인 솔일재(率一齋)[대구광역시 수성구 시지동 17]가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