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6000208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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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金基權 |
영어공식명칭 | Kim Gigwon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광주광역시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노기욱 |
[정의]
일제강점기 광주학생운동을 주도한 독립유공자.
[개설]
김기권(金基權)[1910~2005]은 전라남도 광주군 광주면 양림정(楊林町) 116번지[지금의 광주광역시 남구 양림동]에서 태어났다. 일제강점기 성진회(醒進會)와 독서회(讀書會)를 조직하여 학생소비조합을 운영하였으며, 일제에 체포되어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옥고를 치렀다.
[활동 사항]
김기권은 광주고등보통학교[지금의 광주제일고등학교] 재학 중인 1926년 11월 3일 전라남도 광주군 광주면 부동정(不動町)[지금의 광주광역시 동구]에 있는 최규창(崔圭昌)의 하숙방에서 장재성(張載性), 왕재일(王在一)을 비롯한 광주고등보통학교, 광주공립농업학교 재학생 15명과 성진회를 조직하였다. 성진회는 월 회비 10전으로 하였고, 매월 첫째 주와 셋째 주 토요일에 모여 식민 통치의 부당성을 연구하기로 하였다. 1927년 3월 성진회 기밀이 누설될 염려가 있어 정남균(鄭南均)의 집에 모여 5개월 만에 해체하였다.
1928년 6월 김기권은 광주고등보통학교 재학생 이경채(李景采)에 대한 학교 측의 퇴학 처분에 대해 복교 운동을 주도하고 동맹 휴교를 결의·시도하였는데, 이로 인하여 무기정학을 당하였다. 1928년 7월에는 최규창의 하숙방에 동지들과 모여 맹휴대책중앙본부를 설치하고 지도하던 중 일제에 붙잡혀 징역 6월 형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1929년 6월 일본 도쿄[東京]에서 돌아온 장재성의 주장으로 전라남도 광주 시내 각 학교 학생 지도자들은 비밀결사 독서회중앙본부를 조직하였다. 한편, 독서회중앙본부는 독서회원의 재정 활동으로 학생소비조합을 설치하였다. 김기권은 운영자금으로 500원을 출자하고 학생소비조합의 영업을 담당하였다. 1929년 11월 3일 일제에 체포되어 1930년 10월 광주지방법원에서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징역 2년 6월 형을 선고받았으며, 1931년 6월 항소하여 대구복심법원에서 징역 1년 형이 확정되어 옥고를 치렀다.
[상훈과 추모]
1982년 건국포장,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각각 수여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