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6000073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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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壬辰倭亂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사건/사건·사고와 사회 운동 |
지역 | 광주광역시 |
시대 | 조선/조선 |
집필자 | 노성태 |
[정의]
1592년부터 1598년까지 2차례에 걸쳐 일본군이 조선을 침략하여 전라도 광주를 비롯한 조선 전역에서 일어난 전쟁.
[개설]
임진왜란은 임진년에 일어났다 하여 임진왜란이라 하며, 제2차 침략을 정유재란이라고 한다. 임진왜란 당시 관군이 힘을 쓰지 못하고 무너지며 한양이 함락되자, 전라도 광주 지역을 비롯한 호남 각지에서 김천일·고경명·김덕령·최경회 등이 의병을 일으켜 이에 대항하였다.
[역사적 배경]
조선은 통신사(通信使)를 통해 일본의 침략 계획에 대한 논쟁이 있었지만, 동인과 서인 간의 정치 싸움이 치열하여 전쟁 준비에 소홀하였다. 일본은 도요토미 히데요시[豐臣秀吉]가 일본 내의 혼란을 수습하고 전국을 통일하였다.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전국 통일 후 내부의 불안을 없애기 위해 명나라를 침공한다는 명분을 내걸고 1592년(선조 25) 4월 13일 15만 대군을 일으켜 조선을 침략하였다.
[경과]
관군이 맥없이 무너지면서 일본군은 한 달도 채 안 되어 한양을 함락하였다. 이때 전세를 역전시키는 발판을 마련한 사람들이 전라도 수군과 의병이었다. 여수에 본영을 둔 전라좌수영 소속의 수군은 경상도 해안까지 진출하여 왜의 수군을 격파하였다. 특히, 한산도 대첩과 부산포 해전에서 승리함으로써 바다를 장악하여 적의 통로와 보급로를 차단하였다.
임진왜란 초기 보존되었던 전라도 광주 지역은 군량의 보급기지 역할을 톡톡히 하였고, 의병을 일으켜 경상도 등지에서 왜군과 치열하게 싸웠다. 행주대첩을 승리로 이끈 주력도 전라도 관찰사 권율이 이끈 전라도의 관군이었다. 특히, 전라도 광주 지역은 의병이 거병한 중심지였다. 광주 출신 고경명은 고종후·고인후 등 두 아들과 함께 6,000여 명의 의병으로 거병하였고, 김덕령은 모친의 상(喪) 중임에도 전국 의병 총사령관이 되어 활약하였다.
[의의와 평가]
임진왜란 당시 전라도가 어떤 지역이었는지는 이순신 장군이 전라좌수영을 한산도에 전진 배치하면서 족친인 현덕승에게 보낸 편지글 “약무호남 시무국가(若無湖南 是無國家)”라는 말속에 잘 남아 있다. “만약 호남이 없으면 국가도 없을 것이다”라는 것은, 호남은 국가를 지키는 울타리일 뿐 아니라 국가 식량처로 매우 중요한 곳이니 꼭 지켜져야 한다는 뜻이었다. 그러나 임진왜란 당시 전라도 의병과 수군의 활약상을 보면 “만약 호남이 없었다면 국가도 없었을 것이다”라는 해석도 가능하다. 임진왜란 당시 국난을 극복한 가장 중요한 역할을 수행한 곳은 전라도였고, 전라도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