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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3001004
한자 復興社勞動爭議
영어음역 Buheungsa Nodongjaengui
영어의미역 Buheungsa Labor Difficulties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사건/사건·사고와 사회 운동
지역 서울특별시 구로구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구창환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노동운동
발생(시작)연도/일시 1985년 6월 28일연표보기
종결연도/일시 1985년 6월 28일연표보기
발생(시작)장소 서울특별시 구로구
관련인물/단체 대우어패럴 노동조합|부흥사 노동조합

[정의]

1985년 서울특별시 구로구에 있던 부흥사에서 구로동맹파업의 일환으로 일어난 노동 운동.

[역사적 배경]

1983년 말 부분적 자유화 조치에 따른 일시적 유화 국면으로 노동 운동과 학생 운동이 점차 활발해졌다. 5공화국 정권은 이를 간과할 경우 1986년 아시안 게임, 1987년 대통령 선거 등 정권 유지를 위한 국가 행사를 추진하는 데 장애가 될 것이라는 판단 속에 유화적 통제 방식을 거두고 민중 운동에 대한 탄압을 강화하였다.

1985년 4월 대우자동차투쟁과 5월의 미문화원점거농성투쟁을 기점으로 정권은 학생운동 출신 운동가들을 ‘위장 취업자’, ‘불순 세력’으로 몰아 탄압을 가하였으며 민주 노조 운동에 대한 탄압을 본격화하였다. 민주 노조 운동이 가장 활발하던 구로 지역은 정권의 주요 통제 대상이었다. 정권은 민주 노조들을 개별적으로 무력화시키려는 방식을 택하였다. 그러한 탄압의 시작은 1985년 대우어패럴의 임금 인상 투쟁 과정에서 파업을 주도한 노조 간부에 대한 회사 측의 고소·고발에서 비롯되었다.

[목적]

부흥사의 근로 조건은 저임금과 장시간 노동이 기본이었으며 작업 환경이나 기숙사 등 시설 또한 열악한 상태였다. 특히 노동자들의 불만은 ‘비인격적 대우’에 집중되어 나타났는데, 부흥사 노조의 노동 쟁의는 이러한 사태를 개선하기 위한 목적을 가지고 있다.

[발단]

1985년 6월 22일 오전 대우어패럴 노조 지도부 3인이 전격적으로 구속되었다. 6월 23일 대우어패럴 노조는 임시대의원대회를 개최하여 24일부터 파업을 하기로 결정하였다. 이어 효성물산, 선일섬유, 가리봉전자 등도 노조 간부들이 청계피복노조 사무실에 모여 6월 24일부터 동맹 파업을 벌이기로 결정하고 연대투쟁위원회를 구성하였다. 이들에게 노조 간부 구속은 ‘1970년대 민주노조파괴책동의 재판’이며 ‘민주 노조를 각개 격파하려는 조직 탄압의 시발점’으로 인식되었다. 그들은 노조들의 연대로 대항해야 한다고 결정하였다.

[경과]

6월 27일 부흥사 노조 일부 간부들과 활동가 20여 명이 모여 파업 ‘작전 계획’을 세웠다. 6월 28일 부흥사 노조원 120여 명은 출근과 동시에 구속자 석방, 노조 탄압 중지, 근로 조건 개선을 요구하며 3층 작업장에서 연대투쟁에 동참하였다.

[결과]

그러나 쇠파이프와 몽둥이로 무차별 난타를 가하는 남자관리직원들에의해 오후 4시반경 해산되었다. 경찰 병력과 재단사들이 주축이 된 구사대가 부흥사 노동자 118명 전원을 연행해 가는 것으로 파업이 끝나게 되었다. 해산 이후 회사는 공갈과 협박, 폭행 등으로 80여명에게 강제사직서를 쓰게하고, 29일부터 무기한 휴업에 들어갔다.

[의의와 평가]

부흥사 노동 쟁의는 구로지역의 민주노조들이 정권의 탄압에 맞서 벌인 동맹 파업의 일환이다. 이는 노동자들의 의식을 직접적으로 자각시켜 노동자들의 계급의식을 드높였을 뿐 아니라 1980년대초 정부의 탄압에 개별 노조로 대응하면서 와해되었던 민주 노조 운동의 한계를 극복한 것이었다 하겠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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