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300098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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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勞動運動 |
영어음역 | Nodongundong |
영어의미역 | Labor Movement |
분야 | 정치·경제·사회/사회·복지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
지역 | 서울특별시 구로구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장경호 |
[정의]
서울특별시 구로구의 노동자 계층이 생활 조건을 유지·향상시키기 위하여 벌이는 조직적인 운동.
[개설]
구로 지역의 노동운동은 주로 구로공단을 중심으로 1970년대에 본격적으로 전개되었다. 1960년대 이후 진행된 경제 개발 정책은 노동자의 생활에도 영향을 주었다. 1960년대 경제 개발 기간에 급속히 진행된 산업화로 말미암아 농업 인구가 공업 분야로 유입되면서 노동 인구는 증가하기 시작하였으나 그에 따른 생활 수준은 향상되지 못하였다. 노동 조건도 대체로 열악했고, 산업 재해와 질병도 늘어나고 있었다. 이러한 조건 아래 1960년대 노동운동이 계속되었고, 5·16군사정변 직후 계엄령 치하에서 노동조합이 해체되고 노동쟁의가 금지되었을 때도 노동조합 결성과 임금 인상, 노동 조건 개선 등을 요구하는 항의와 진정과 고발이 계속되었다.
[구로 지역 노동운동의 변천]
1. 1970년대
1970년대 구로공단의 노동운동은 주로 임금 인상을 비롯한 노동 조건 개선, 조합 결성, 중간관리자 배척 등의 요구가 중심을 이루었다. 1970년대 구로공단의 노동운동은 아직 노동자들이 스스로 조합을 조직하고 노동운동을 전개하기 어려웠던 시기였으므로 사회단체나 종교단체, 도시산업선교회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았다.
1970년대 구로공단의 주요 노동운동은 다음 몇 가지를 들 수 있다. 태한산업에서 노동자들의 임금 체불 문제로 노동쟁의가 일어났고, 마산방직 구로동 편직공장에서 는 노동 조건 개선을 목적으로 노동조합을 설립하여 노조 활동을 벌였다. 그 밖에도 구로공단 제1단지에 있는 월성섬유회사·동광통산회사·크라운전자·한국마벨주식회사, 구로공단 제2단지에 있는 와이비리상사와 완구 생산 회사인 대협, 구로공단 제3단지에 있는 대동전자 등에서 노조를 결성하여 열악한 노동 조건을 개선하고자 노동쟁의를 벌였다.
2. 1980년대
1980년대 유신 정권 붕괴 이후 노동운동에 대한 강압적 통제가 약화되면서 노동운동이 활발하게 전개되었다. 이 시기 노동쟁의는 노동 조건 개선과 함께 어용 노조 퇴진과 노조 민주화를 요구하는 성격을 띠었다. 구로공단에서도 노동 조건 개선 요구와 함께 노동조합 결성을 위한 활동을 활발히 전개하였고, 임금 인상을 비롯한 노동 조건 개선, 노동조합 결성을 둘러싼 노동쟁의를 벌였다. 구로공단 노동자들의 이러한 노동운동은 1985년 6월의 연대 파업으로 발전하였다.
1980년대 구로공단의 구체적인 노동운동으로는 대우어패럴, 가리봉전자, 효성물산의 임금 인상을 비롯한 노동 조건 개선을 위한 노동쟁의가 대표적이다. 구로 연대 파업 이후 한국 노동운동은 1987년을 기점으로 전두환 정권의 6·9선언으로 인한 정치적 억압의 완화에 힘입어 확대되었다. 울산 현대그룹 계열사 노조에서 시작된 7~8월 노동쟁의는 전국으로 퍼져 나갔고, 구로공단의 노동자들도 노동조합을 중심으로 노동 조건 개선을 요구하며 노동쟁의를 전개하였다.
1987년에 집중되었던 구로공단의 노동쟁의는 1988년 들어서도 계속되었다. 1988년 상반기에 쟁의를 전개한 구로공단의 대표적인 사업체는 대한광학, 신한밸브, 한국KDK, 동방전자부품 등이다. 1988년 4월 4일 구로공단 제2단지의 한국KDK에서 100여 명의 노동자들이 임금 인상 40%를 요구하며 파업 농성을 전개하였으나 4월 8일 강제로 해산되면서 쟁의는 일단락되었다. 이후 회사 측은 파업 농성을 강제로 해산하고 어용 노조를 결성하였다.
구로공단의 노동자들은 이처럼 1987년과 1988년을 계기로 노동조합을 중심으로 활발한 활동을 벌였지만 이후 정부의 노동운동 통제 정책이 강화됨에 따라 1990년대 들어 노동쟁의는 점차 수그러들었다.
[현황]
구로공단의 노동운동은 1990년대 들어서면서 전반적으로 크게 줄어들었다. 구로공단의 노동쟁의 감소는 특히 공단의 고용 구조 변화에 따른 노동 조건의 변화와도 관련이 있다. 구로공단은 1980년대 후반부터 전체적으로 노동자 수가 줄어들고 있었고, 대규모와 중규모 공장이 감소하고 소규모 업체가 증가하여 하청 생산으로 생산 구조가 점차 분산되면서 전체적으로 노동쟁의가 줄어들게 되었다.
또한 구로공단이 1980년대 이후 노동 조건 개선과 노동쟁의 사전 예방, 대화를 통한 노사 협력을 정착시키기 위해 다양한 노력을 기울인 결과이기도 했다. 이를테면 노사 전진 대회, 노사정 간담회, 노사 협조 우수업체 견학, 노조 간부와 모범 사원의 국내외 산업 시찰, 땅굴 견학 및 군부대 견학, 노사 분규 예방 대책 회의 개최 등 다양한 형태의 행사를 통해 노사 협조 체제를 강화하였다.
구로공단은 2000년 12월 구로디지털산업단지로 명칭을 바꾸고 본격적으로 첨단 IT 산업단지로 개편하여 입주 업체가 급증하고 중소기업 중심의 기술 집약형 업종 중심으로 재편되어 예전과 같은 노동운동은 일어나지 않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