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80071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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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三核都市構想 |
이칭/별칭 | 1977년 서울도시기본구상 |
분야 | 정치·경제·사회/정치·행정,정치·경제·사회/경제·산업,역사/근현대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
지역 | 서울특별시 강남구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설정임 |
[정의]
서울특별시 강남구 일대[영동지역]를 서울을 구성하는 3핵 가운데 하나로 계획한 도시기본구상.
[개설]
서울특별시는 1977년 4월 서울의 중심기능을 3개의 핵으로 분산하여 4대문 안의 단핵도심으로 이루어진 서울을 3개의 핵으로 나누는 ‘3핵 도시구상’을 담은 ‘서울도시기본구상’을 발표하였다. 이에 따르면 강북도심은 국가의 중심, 영등포와 여의도의 영등포도심은 수도권의 산업중심, 영동지구와 잠실지구를 연결하는 영동도심은 서울의 중추·금융·업무기능 등으로 기능분산을 시도하였다. 서울의 인구는 800만 명을 예상하였으며, 강북권 400만 명, 영등포권 230만 명, 영동권 170만 명으로 계획하였다. 이러한 3핵 도시구상은 서울도시철도 2호선 건설을 위한 계획적 논리의 토대가 되었다.
[추진 배경]
1974년 9월 4일에 서울시장으로 부임해 온 구자춘은 서울시 도시계획을 획기적으로 바꾸어 볼 것을 엄밀히 구상하고 있었다. 1974년 가을 구자춘 시장은 건축가 김수근, 홍익대학교 도시계획과 교수 김형만을 만나 앞으로 서울의 도시계획 방향을 타진하였다. 이 자리에서 김형만이 주장한 것이 "현재의 서울도시계획에는 철학이 없다. 서울의 도시계획이 철학을 가지기 위해서는 지금까지의 단핵 도심을 삼핵으로 하고 강북 인구 및 산업의 합리적인 분산을 기도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1975년 3월부터 김형만 교수에 의한 ‘서울 삼핵화 도시구상’이라는 것의 본격적인 연구가 시작되었다. 그의 주장에 의하면 "서울은 조선시대로부터 4대문 안의 단핵 도심으로 그 기능을 유지해 왔었다. 앞으로는 서울의 중심기능을 3개의 핵으로 분산하여 강북도심, 여의도와 영등포로 이어진 영등포도심, 그리고 영동·잠실 지구를 연결하는 영동도심의 3개 도심을 형성함으로써 기능분산을 기도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를 바탕으로 발표된 것이 ‘서울도시기본구상’이다.
[내용]
3핵 도시구상 을 요약하면 첫째 기존의 강북핵은 국가의 중심으로서 중추적 중앙행정기능의 도심으로, 둘째 영등포핵은 경인, 경수간의 산업지대 중심기능의 도심으로, 셋째 신개발지인 영동핵은 기존 강북도심의 기능 가운데 과밀의 주된 요인이 되고 있는 기능의 대담한 분산을 시도하도록 그 기본방침을 정해, 2차적 행정기능을 주로 하여 서울역의 일부기능, 서울시청을 포함한 2차 관정의 집합된 새로운 시빅센터, 금융 및 업무기능 등 장래의 수요에 대처한 기능을 수용하는 도심으로 개발한다는 것이다.
이를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기존 도심이 담당하는 기능 중 서울시청을 포함한 2차적 관청, 국세청, 관세청, 조달청 등과 한국은행, 산업은행, 외환은행 등의 금융기관을 영동으로 옮기도록 한다는 것이다. 또한 선릉공원 동쪽에 철도역인 남부서울역을 신설하여 수원~서울 간 복복선 계획 중의 복선을 수원~성남~영동으로 연결하도록 하고, 이 남부서울역은 또 중앙선 철도의 기·종착점이 되도록 계획하였다. 서울시청과 2차 관청 집단의 중심에 새로운 문화시설 단지를 건설하고 그 외 상설 무역센터 건설, 국제 스포츠센터 건설, 버스종합터미널 건설, 지하철 노선계획의 재조정, 강북에 편재되어 있는 각급 학교의 강남 이전 등을 포함하고 있다. 이러한 계획은 많은 부분이 실현되어 현재의 강남을 이루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