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20125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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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明水臺 地名 由來」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
유형 | 작품/설화 |
지역 | 서울특별시 동작구 흑석동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김국제 |
수록|간행 시기/일시 | 1994년 9월 30일 - 「명수대 지명 유래」 「명수대」라는 제목으로 『동작구지』에 수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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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지명 | 명수대 - 서울특별시 동작구 흑석로5길 69[흑석동 198-39] |
[정의]
서울특별시 동작구 흑석동에 있는 명수대의 지명 유래담.
[개설]
명수대(明水臺)는 맑은 한강물이 흐르는 경치좋은 곳이라는 뜻을 가진 지명이다. ‘명수대(明水臺)’라는 지명은 1920년경 일본인 부호 기노시타 사카에[목하영(木下榮)][1887~?]가 서울특별시 동작구 흑석동 서달산 자락에 지은 별장 혹은 1929년 현재의 효사정 인근 흑석동 지역을 개별하며 이름 붙인 명수대 문화주택에서 유래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친일 청산 작업 일환으로 대부분 사라졌으나 현재 명수대 아파트 등 일부에서 쓰이고 있다.
[채록/수집 상황]
「명수대 지명 유래」는 1994년 서울특별시 동작구에서 발행한 『동작구지』에 수록되어 있다.
[내용]
서울특별시 동작구 흑석동에 있는 명수대(明水臺)라는 지명은 일제 강점기 일본인 부호 기노시타 사카에가 서울특별시 동작구 흑석동 서달산 자락에 별장을 짓고, 현재 흑석동 공영주차장 앞에서부터 옛 우리은행[서달로14길] 일대에 약 5천 평 정도의 커다란 연못을 판 후 위락시설 등을 만든 다음 한강물이 흐르는 경치 좋은 곳이라는 뜻으로 ‘명수대’라 이름 붙인데서 유래되었다고 전해왔다. 그러나 스나모토 후미이코에 따르면, 명수대는 1929년 일본인 기노시타 사카에가 현재 효사정 인근 흑석동에 대규모 교외 주택지를 개발 및 분양한 뒤 이를 가리켜 명수대 문화주택이라고 부른 데서 생긴 명칭이라고도 한다.
광복 후 기노시타 사카에의 별장은 철거되었으며, 기노시타 사카에가 위락 시설로 꾸며놓았던 연못 역시 메우고 시장이 들어섰다. 이 시장을 연못자리에 있는 시장이라 하여 연못시장으로 불렀다.
한편 ‘명수대’라는 지명은 광복 이후 1947년 동회제도를 실시하면서 흑석동과 동작동을 포함하는 영등포구 명수대남동이 설치되었으나 1955년 행정동제가 실시되면서 흑석동으로 바뀌었다.
광복 후에도 한동안 사용되던 ‘명수대’라는 이름의 기관들[명수대교회는 흑석동교회로, 명수대국민학교는 흑석초등학교로 변경]은 대부분 없어졌으나 아직도 명수대 현대아파트 등 일부 지명으로 남아 일제 강점기의 아픔을 전해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