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90153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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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信仰 |
분야 | 생활·민속/민속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
지역 | 서울특별시 도봉구 |
집필자 | 권선경 |
[정의]
서울특별시 도봉구 지역에서 마을의 안녕과 풍요를 위해 행하는 신앙 체계.
[개설]
마을 신앙은 한 마을을 단위로 재앙을 멀리하고, 마을의 화합과 번창을 신에게 기원하는 신앙 행위이다. 서울특별시 지역의 대표적인 마을 신앙은 부군당굿과 도당굿으로 변별할 수 있다. 도봉구는 이 가운데 도당굿이 전승되던 곳이다. 도당굿은 경기도 지역의 대표적인 마을굿을 의미한다. 따라서 도봉구의 대표적인 마을 신앙이 도당굿이라는 데에서 도봉구가 과거 경기도의 생활·문화권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실제로 행정 구역상으로 경기도에서 뒤늦게 서울로 편입된 지역에 속한다.
도봉구에는 서원말 도당굿과 원당 마을 도당굿이 있었는데, 현재는 모두 전승이 끊긴 상태이다. 도당굿의 전승이 끊겼지만 안골 마을 대감제[안골 거릿대감제]와 원당 마을 행목대신제가 마을 신앙으로 전승되고 있다.
[종류]
1. 도당굿
서원말과 원당 마을은 이웃한 강북구 우이동의 ‘삼각산 도당굿’과 같은 ‘서원말 도당굿’과 ‘원당 마을 도당굿’이 전승되던 곳이다.
서원말 도당굿 은 삼동(三洞)에서 지냈는데, 삼동이란 서원 마을·안골·서원내 등이며 무시울[무수울] 주민도 일부 참여했었다고 한다. 서원 마을 노인회 총무 이정로와 함께 있던 경로당 할아버지들에게 채록한 도당굿 관련 내용을 정리하면 아래와 같다.
도당굿은 약 300년 전부터 지냈다고 하는데, 현재는 전승이 끊긴 상태이다. 이틀씩 행하던 큰 규모의 마을굿이었고, 정씨 할머니라고 서원 마을에서 살던 무당이 당주 무당이었다. 당굿이 끊기기 전까지 정씨 할머니가 당주 무당을 맡았다고 한다. 서원 마을 노인회 총무 이정로는 6·25 전쟁 당시 당집이 훼손되면서 당굿의 전승 역시 끊겼다고 기억하고 있는데, 『도봉산 서원 마을 조사 보고서』에는 1980년대 초에 사라졌다고 언급하고 있다. 서원말 도당굿 자리는 현재 도봉산 둘레길이 개발되면서 제단과 도당 바위가 모두 접근 금지 구역이 되었다.
원당 마을의 사정도 서원 마을과 비슷하다. 원당 마을 도당굿의 연원은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원당 마을 경로당에 모인 70대 이상의 노인들이 모두 도당굿을 자신이 태어나기 전부터 행해졌다고 증언하는 것으로 보아 그 연원이 짧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당집은 우이 고개[도당재: 굿을 하는 신당이 있던 고개]에 있었고, 서낭당이라고 했다. 당집 앞에 당굿을 하던 커다란 터가 존재했고, 당집이 있던 곳에서 조금 올라가면 산신제를 지내던 곳이 존재했다. 박정희 대통령 시절 마을의 어떤 사람이 당집을 훼손하고, 후에 산이 개발되면서 굿터까지 출입 금지가 되면서 산에 올라갈 수가 없어서 당굿의 전승이 끊겼다.
현재는 나무가 우거지고, 철조망으로 굿터에의 출입을 막아 놓았기 때문에 당집 터와 굿터를 찾기 어렵다. 원당 마을의 도당이 위치하던 산 역시 개발되면서 당집과 신목(神木)이 위치하는 곳이 접근 금지 구역이 되면서 도당굿의 전승이 끊기게 되었다고 한다. 원당 마을 도당굿은 원당 마을 경로당 여자 총무인 이미자와 함께 있던 할머니들에게서 들은 것을 정리한 것이다.
서원 마을 노인회 총무 이정로와 원당 마을 원당 경로당 총무 이미자에 의하면, 서원 마을과 원당 마을 모두 당집이 훼손되면서 당굿의 전승이 끊겼다고 한다. 그러나 도당굿의 전승이 끊겼다고 이 지역 마을 신앙의 전승이 단절된 것은 아니다. 서원 마을의 경우는 도당굿과 함께 지내던 안골 거릿대감제를 현재도 음력 정월 20일에 지내고 있다. 안골 거릿대감제는 도당굿과 별도로 행해지던 안골의 마을 신앙인데, 거릿대감제의 거리라는 명칭에서 상당(上堂)의 성격을 지닌 도당에 비해 하당(下堂)의 성격을 지니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실제로 서원말 도당굿은 안골을 포함한 서원 마을과 서원내가 함께 치제(致祭)하던 마을 신앙이었고, 거릿대감제는 안골에서만 전승되고 있는 마을 신앙이기 때문이다.
3. 원당 마을 행목대신제
원당 마을의 경우는 서원 마을과 조금 다른 양상으로 마을 신앙이 변화되어 전승되고 있다. 도당굿이 중단되자 원당 마을 주민들은 마을에서 과거부터 중요하게 여겼던 은행나무를 신체(神體)로 한 마을 제의를 10여 년 전에 새롭게 만들어 행하고 있다. 은행나무를 신체로 했다고 해서 행목대신제라고 한다. 행목대신제를 행하기 전에도 마을에서 은행나무를 신목으로 여겨 영험하게 생각하고 개인적으로 치성을 드리기는 했지만 마을 차원에서 치제하는 경우는 없었다. 마을 공동의 제의인 도당굿이 중단되자 마을 사람들이 영험하게 생각하던 은행나무를 중심으로 행목대신제라는 이름의 마을 신앙이 새롭게 시작됐다고 할 수 있다.
[절차]
1. 도당굿
도당굿은 음력 2월 초순에 택일하였다. 도당굿 날짜가 잡히면 생기복덕을 보아 도가와 소임 및 당주를 선출하였다. 도가는 전체 도당굿을 주관하고, 소임은 삼동에서 각각 한 명씩 뽑았다. 도당굿 당일이 되면 먼저 동틀 무렵 무당과 당주, 소임 등이 산제당에 올라가 산신을 모셔 온다. 산신을 모셔 온 다음에는 무당이 이틀 동안 도당굿을 진행했다. 당주 무당 외에 여러 명의 조무와 악사들을 대동한 큰굿이었다고 한다.
원당 마을 도당굿 도 서원말 도당굿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음력 정월 그믐쯤 날짜를 잡으면 음력 정월 2월 초순 닷새 안으로 굿을 하였는데, 도당굿의 제관은 각 마을에서 반장 1명씩과 도화주, 이화주, 삼화주를 뽑았다. 도당굿은 먼저 산신제를 끝낸 후 아침부터 저녁 늦게까지 이어졌다.
안골 마을 대감제 는 음력 1월 20일에 지낸다. 과거에는 밤 11시 무렵에 대감제를 지냈는데, 현재는 저녁 9시에서 10시 사이에 지낸다고 한다. 은행나무 앞 제상에 제물을 진설하고 삼헌(三獻), 독축(讀祝), 소지(燒紙) 등의 순으로 진행된다. 과거에는 제관과 축관이 각각 있었지만 현재는 동네의 나이 드신 분이 축문을 읽고, 헌주하고, 대동 소지를 올리는 것으로 끝이 난다. 제사가 끝난 후에는 마을 사람들이 모여 모두 음복한다.
3. 원당 마을 행목대신제
원당 마을 행목대신제 는 마을 토박이들의 모임인 향주회를 중심으로 이루어진다. 향주회의 기금으로 운영되며, 향주회의 부녀회에게 음식을 장만한다. 음력 정월 보름 안의 일요일 오전 7시 정도부터 오전 9시까지 약 2시간 정도 무당의 고사 형식으로 이루어진다. 과거 원당 마을에서 살던 보리 보살이라는 무당이 주재한다. 도당굿에 비해서 많이 축소되었지만 기를 뽑고, 사실을 세우고, 소지를 태우는 등의 절차는 빠지지 않고 들어간다.
[현황]
도봉구의 대표적인 마을 신앙이었던 도당굿의 전승은 현재 끊긴 것으로 파악된다. 여러 마을이 함께 치제하던 도당굿의 전승은 끊겼지만 하나의 안골에서만 모시던 안골 마을 대감제와 도당굿의 전통을 이은 원당 마을 행목대신제가 마을 신앙으로 전승되고 있다.
[의의]
서원말 도당굿 과 원당 마을 도당굿의 전승은 끊겼지만 안골 마을 대감제와 원당 마을 행목대신제가 마을 신앙으로 전승·유지되고 있다. 서원말 도당굿의 전승이 끊긴 이유로 당집의 훼손을 일차적으로 들 수 있지만, 전승의 물적 토대가 되었던 삼동 마을이 개발되면서 토박이를 바탕으로 한 지역 공동체가 해체된 것도 중요한 이유로 생각할 수 있다. 안골 마을 대감제가 전승되고 있는 안골은 과거 개발 제한 구역으로 선정되어 가옥 구조의 변화와 지역민의 이주가 많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현재도 토박이들을 만나는 것이 어렵지 않기 때문이다. 위의 두 가지가 안골 마을 대감제라는 마을 신앙이 전승될 수 있었던 중요한 이유로 파악된다.
원당 마을 행목대신제 는 도당굿의 전승이 끊기자 그것을 대신할 마을 신앙을 재창조했다는 점에서 의의가 크다. 원당 마을 행목대신제 역시 그 기반은 토박이 문화에 있는 것으로 보인다. 원당 마을은 서울에서 몇 남지 않은 집성촌으로 꼽히는 곳이기도 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