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40002276 |
---|---|
한자 | 朴壽春 |
영어공식명칭 | Park Soochun |
이칭/별칭 | 경로(景老),국담(菊潭),숭정처사(崇禎處士)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인·학자 |
지역 | 대구광역시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전일주 |
출생 시기/일시 | 1572년 - 박수춘 출생 |
---|---|
활동 시기/일시 | 1597년 - 박수춘 정유재란 때 창녕 화왕산성에서 의병으로 활동 |
활동 시기/일시 | 1636년 - 박수춘 병자호란 때 의병 봉기 |
몰년 시기/일시 | 1652년 - 박수춘 사망 |
출생지 | 박수춘 출생지 - 경상북도 청도군 |
거주|이주지 | 박수춘 거주지 - 경상북도 청도군 |
사당|배향지 | 남강서원 - 경상북도 청도군 각북면 남산1길 62[남산리 525] |
사당|배향지 | 임란호국영남충의단 - 대구광역시 동구 효목동 산234-38 |
성격 | 학자|의병장 |
성별 | 남성 |
본관 | 밀양(密陽) |
[정의]
조선 후기 대구 지역에서 활동한 학자이자 의병장.
[가계]
박수춘(朴壽春)[1572~1652]의 본관은 밀양(密陽)이며, 자는 경로(景老), 호는 국담(菊潭) 또는 숭정처사(崇禎處士)이다. 증조할아버지는 박언계(朴彦桂)이고, 할아버지는 박대성(朴大成)이다. 아버지는 동몽교관 박신(朴愼)이고, 어머니는 여흥민씨(驪興閔氏)이다. 형은 박장춘(朴長春)이고, 동생은 박득춘(朴得春)이다. 부인은 교관 김우용(金遇鎔)의 딸 경주김씨(慶州金氏)이다.
[활동 사항]
박수춘은 1572년(선조 5) 지금의 경상북도 청도군에서 태어났다. 어릴 적부터 가학을 계승하고자 항상 『소학(小學)』을 애독하였다고 한다. 1597년 정유재란 때 격문을 돌리고 의병을 일으켜 망우당(忘憂堂) 곽재우(郭再祐)와 함께 창녕 화왕산성(火旺山城)을 지켰다. 1618년(광해군 10)에는 인목대비(仁穆大妃) 폐위의 부당성을 지적하는 상소를 올리기도 하였다.
1636년(인조 14) 병자호란이 일어나고 한성이 함락되자 박수춘은 의병을 일으켜 북상하던 중에 인조(仁祖)가 삼전도에서 굴욕적인 항복을 하였다는 소식을 접하였다. 박수춘은 분통함과 충절을 “산에 들어가 숭정처사가 되려고 하네. 병자년 백성으로 사는 것이 부끄럽다네”라는 시로 표출하였다. 그 후 산중에 들어가 학문을 연구하며 대구의 한강(寒岡) 정구(鄭逑)[1543~1620], 여헌(旅軒) 장현광(張顯光) 등과 교유하였다. 또한 향교 운영에 힘을 보태고 향약을 손보는 등 지역민 교화에 힘을 쏟았고, 학문을 강론하며 후학 양성에 전념하였다. 1652년(효종 3) 11월 5일 사망하였다.
[학문과 저술]
박수춘의 문집으로는 『국담문집(菊潭文集)』이 있으며, 저술로는 『독서지남(讀書指南)』·『학문유해(學問類解)』·『도통연원록(道統淵源錄)』·『동방학문연원록(東方學問淵源錄)』·『의례견문해(疑禮見聞解)』 등이 있다.
[상훈과 추모]
박수춘은 1672년(현종 13) 통정대부 호조참의에 추증되었고, 1694년에 현 청도군 각북면 남산1길 62[남산리 525]의 남강서원(南岡書院)에 배향되었다. 남강서원은 오졸재(迂拙齋) 박한주(朴漢柱)와 박수춘을 배향하기 위해 사림의 건의로 창건되었다. 이후 1868년(고종 5)에 서원 철폐령으로 훼철되었다가, 밀양박씨 국담공파 사우당문중의 기부금으로 2000년에 재건하였다. 대구광역시 동구 효목동 산234-38의 망우당공원 내 임란호국영남충의단 감실(龕室)에도 봉안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