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30083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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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場戰鬪 |
영어의미역 | Bowling Alley Battle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사건/사건·사고와 사회 운동 |
지역 | 경상북도 칠곡군 가산면 다부리|금화리|천평리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김일수 |
성격 | 6·25 전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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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생(시작)연도/일시 | 1950년 8월 18일 |
종결연도/일시 | 1950년 8월 23일 |
[정의]
1950년 8월 18일부터 8월 23일까지 경상북도 칠곡군 가산면 다부리·금화리·천평리 일대에서 벌어진 전투.
[발단]
8월 15일 북한군 제1사단은 다부 동북 방향으로 공격해 오고, 제13사단 일부는 다부 정면의 금화(金華)로, 제15사단은 유학산으로 공격해 오고, 제3사단은 왜관 방면으로 공격해 왔다.
[경과]
북한군이 전차로 다부동으로 공격해 오자 5번 도로 서편[소이리 맞은편 고지]에 위치한 제11연대 제1대대는 전차 6대와 자주포 7대를 앞세운 북한군 1개 대대를 맞아 사수하였다. 또한 다부동 동편 466고지[오계산]의 제15연대 제2대대는 방어진지를 구축하는 과정에서 북한군의 기습을 받았으나 진지 내에서 벌어진 백병전 끝에 북한군의 공격을 막아 내었다. 8월 17일 오후 8시 워커 장군은 경상남도 영산(靈山)전투에 투입됐다가 경상북도 경산(慶山)에 대기 중이던 미 제25사단 제27연대[‘이리부대’ 또는 ‘소방대’]를 다부동에 투입하였다. 제27연대는 M-26 퍼싱 전차 1개 중대와 야전포병 2개 대대를 배속 받고, 북한군 경계부대를 격파하면서 다부동을 북상하여 8월 18일 오후 1시에 448고지인 천평(泉坪)과 357고지인 금화(金華)를 잇는 북단을 점령하였다. 곧이어 제27연대는 계곡 양편 능선에 포진한 국군과 연합해 최초의 한미 연합작전을 준비하였다. 제27연대는 전차 8대와 로켓포 6문을 배치하여 전차전에 대비하였다.
8월 18일 저녁부터 다음날 새벽 2시 무렵까지 제27연대는 포병으로 공격 준비 포격을 실시한 후 전차 2대와 자주포 1대를 선두로 수백 명 병력으로 공격해오는 북한군을 격퇴시켰다. 8월 20일 낮에는 미 제5공군이 다부동 일대 북한군 진지에 폭격을 퍼부었다. 이날 밤 제27연대는 전차를 앞세워 다시 공격해 오는 북한군을 격퇴시켰다. 8월 21일 새벽 2시 우측 방면을 방어 중이던 국군 제15연대 제2대대는 북한군 1개 대대 병력의 기습을 격퇴시켰다. 아침이 되자 좌측의 국군 제11연대 제1대대가 356고지[泉坪]를 점령하였고, 건너편 357고지의 제15연대 제2대대와 양쪽에서 감제할 수 있어 전투의 주도권을 장악하게 되었다. 한편, 미 제27연대는 북한군의 대대적인 야간 공격을 예상하고 제1·2선 지뢰지대를 설치하였다. 북한군은 포격을 가한 후 T-34 전차 9대와 SU-76 자주포를 앞세워 도로로는 보전(步戰) 협동부대, 좌우로는 2개 대대 병력으로 공격을 가했다. 이에 개전 이래 최초의 전차전이 벌어져 북한군의 패퇴하는 것으로 마무리되었다. 또 국군 제11·15연대는 양편 능선을 공격해오던 북한군 2개 대대 병력을 격퇴시켰다. 당시 포판 화구(火球)가 날아가 후방에서 폭발하는 상황이 마치 볼링공으로 핀을 넘어뜨릴 때의 모양과 흡사해 ‘볼링장(Bowling Alley) 전투’라는 별명이 생겼다.
8월 22일 오후 10시 무렵 국군 제11연대로 북한군 제13사단 포병 연대장 정복욱(鄭鳳旭) 중좌가 투항해 왔다. 투항자의 제보에 따라 미 공군과 포병이 하판(下板) 부근 과수원을 집중 공격하여 북한군 포병 진지를 무력화시켰다. 이날 밤 북한군은 가산산성 전투를 벌이면서 미군의 증강을 막기 위한 견제책으로 제27연대 방면으로 소규모 공격을 여러 차례 시도하였다. 8월 23일 아침부터 미 23연대와 국군 10연대는 공군과 전차 부대의 지원을 받아 협동작전을 벌인 끝에 북한군을 격퇴시켰다. 또 12시 무렵 466고지인 오계산 하단으로 침투하여 미군 진지를 공격해 오던 북한군을 패퇴시켰다. 한편, 국군 제12연대는 유학산을 장악하고, 제11연대가 356고지 북쪽까지 진출함으로써 북한군의 패색이 짙어졌다.
[결과]
8월 24일 새벽 0시 30분 미 제27연대는 연대 정면으로 전차 5, 6대의 엄호를 받으며 2개 중대 병력으로 공격해 오던 북한군을 격퇴하였는데, 이것이 7차례의 마지막 공격이었다. 곧이어 우측의 제15연대 제2대대는 2개조의 특공대로 북한군을 추격하여 휴식 중이던 북한군 1개 중대를 기습하여 궤멸시켰다. 8월 26일부터 미 제27·제23연대는 소속 사단으로 복귀하고 이후 국군 제1사단이 전선을 지켰다.
[의의와 평가]
볼링장 전투는 1주일 동안 한미 연합 작전을 성공적으로 수행한 상징적인 사례로 남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