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30028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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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淞學里烈女申氏旌閭門 |
영어의미역 | Memorial Gate for Filial Piety Sin Clan in Songhak-ri |
분야 | 종교/유교,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건물 |
지역 | 경상북도 칠곡군 가산면 송학리 243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김찬영 |
성격 | 유교건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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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식 | 목조가구식 |
건립시기/일시 | 1841년|6·25전쟁 이후 재건 |
정면칸수 | 1칸 |
측면칸수 | 1칸 |
소재지 주소 | 경상북도 칠곡군 가산면 송학리 243[아랫너실] |
[정의]
경상북도 칠곡군 가산면 송학리에 있는 정려문.
[개설]
열녀 아주신씨는 영천인 사인(士人) 이익수(李益修)에게 출가하여 시부모를 공경하고 남편을 지극히 섬겼으나 남편이 병들어 죽자 본인도 목을 매어 따라 죽었다. 1841년(헌종 7)에 조정에서 신씨의 열행을 기리어 정려를 내렸다.
[위치]
대구~선산간 국도 25호선 동편에 위치한 송학리 아랫너실마을 복판에 자리잡고 있다. 아랫너실마을은 인동장씨들이 살고 있었는데, 1736년(영조 12)에 본관이 영천(永川)인 이재천(李載天)이 군위 소보에서 이곳으로 이거·정착하여 현재까지 후손들이 세거 지향으로 살아오고 있다.
[형태]
현재의 정려문은 6·25전쟁 이후에 새로이 세운 것이며, 정려판에는 “열녀사인이익수처유인아주신씨지여(烈女士人李益修妻孺人鵝州申氏之閭)”라는 내용이 횡서(橫書)로 쓰여 있으며 “상지팔년신축명정(上之八年辛丑命旌)”이라는 연기가 같이 쓰여 있다. 구조 형식은 단칸 규모에 홑처마 맞배지붕의 평대문 형식이다. 얕은 기단 위에 제형 화강석 초석을 놓고 두리기둥을 세운 뒤 판장문의 대문을 달았다. 문 위, 주상부는 판재형 보아지를 끼우고 그 위에 보 밸목을 올린 간략한 민도리형으로 꾸몄고, 전면 창방 위에 정려판을 걸었다. 상부 가구는 간략한 3량가이고, 내부 쪽 주상부의 주칸 사이에 홍살을 끼워 장식했다.
[의의와 평가]
열녀를 기리는 정려문의 구조와 형태를 설필 수 있는 건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