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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부 함평 이씨 정려기」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001983
한자 孝婦咸平李氏旌閭記
분야 구비 전승·언어·문학/문학
유형 작품/문학 작품
지역 경기도 포천시
시대 근대/개항기
집필자 정흥모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저자 생년 시기/일시 1819년 - 「효부 함평 이씨 정려기」 저자 김평묵 출생
저자 몰년 시기/일시 1891년 - 「효부 함평 이씨 정려기」 저자 김평묵 사망
편찬|간행 시기/일시 1906년 - 「효부 함평 이씨 정려기」를 수록한 『중암집』 간행
배경 지역 효부 함평 이씨 정문 - 경기도 포천시 내촌면 마명리
성격 기문
작가 김평묵

[정의]

조선 후기 포천 출신의 유학자 김평묵이 조상의의 처 함평 이씨의 효행으로 받은 정려에 대하여 지은 기.

[개설]

「효부 함평 이씨 정려기」는 조선 후기 포천 출신의 유학자 중암(重菴) 김평묵(金平黙)[1819~1891]이 1816년(순조 16) 조상의(趙尙義)의 처 함평 이씨의 효행(孝行)에 나라에서 내린 정려(旌閭)에 대하여 지은 기(記)이다. 효부 함평 이씨의 효행은 포천의 유학(幼學) 송현정(宋賢鼎)이 상소하여 알렸다. 나라에서는 현재 경기도 포천시 내촌면 마명리에 정려를 세워 주었다.

「효부 함평 이씨 정려기」김평묵의 문집 『중암집(重菴集)』 권(卷) 42에 수록되어 있다.

[내용]

「효부 함평 이씨 정려기」의 내용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어려서부터 효성이 지극하였다. 10여 세 때 하루는 어머니가 병이 들어 의원에게 보이니 따뜻한 꿀을 복용하면 효험이 있을 것이라고 하였다. 그러나 집이 빈곤하여 뜻을 이루지 못하고 근심하였는데, 어느 날 꿀벌 때가 집으로 날아들자 이를 받아 길러 꿀을 얻을 수 있게 되어 어머니의 병을 고쳤다. 그 후 시아버지가 큰 종기로 고생을 하게 되자 입으로 고름을 빨아 병을 고쳤고, 또 시어머니가 병으로 누워 있을 때 변을 맛보아 그 징험으로 시측하면서 천지신명께 기도를 하였으며, 운명하기 직전에는 손가락을 잘라 피를 흘려 넣었으나 결국 소생시키지 못하였다.

[의의와 평가]

「효부 함평 이씨 정려기」는 효(孝)를 중시하는 유학자로서의 김평묵의 모습을 보여 준다. 오늘날에도 포천 지역에는 여러 개의 서원(書院), 사당(祠堂), 영당(影堂), 정려(旌閭), 효우비(孝友碑) 등이 남아 있어 조선 시대 향촌 교화의 수단이자 지배 이데올로기였던 유교 문화에 대한 모습을 자세히 살펴볼 수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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