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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유기」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001877
한자 東遊記
분야 구비 전승·언어·문학/문학
유형 작품/문학 작품
지역 경기도 포천시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정흥모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저자 생년 시기/일시 1651년 - 「동유기」 저자 김창협 출생
저술|창작|발표 시기/일시 1671년연표보기 - 「동유기」 김창협 저술
저자 몰년 시기/일시 1708년 - 「동유기」 저자 김창협 사망
편찬|간행 시기/일시 1710년 - 「동유기」를 수록한 『농암집』 간행
배경 지역 축석령 - 경기도 포천시 소흘읍 이동교리
배경 지역 양문역 - 경기도 포천시 영중면 양문리
성격 기행문
작가 김창협

[정의]

1671년 김창협금강산을 유람하기 위해 포천을 지나고 지은 기행문.

[개설]

「동유기(東遊記)」는 조선 후기의 문신 농암(農巖) 김창협(金昌協)[1651~1708]이 금강산을 유람하려고 길을 떠난 후 포천을 지나고 나서 여행의 감회를 적은 글이다. 「동유기」김창협의 문집 『농암집(農巖集)』 권(卷) 23에 수록되어 있다.

[내용]

나는 어려서부터 금강산(金剛山)의 명성을 듣고 늘 한번 유람해 보고 싶은 바람이 있었다. 그러면서도 마치 하늘에 있는 것처럼 우러러보고는 누구나 갈 수 있는 곳은 아니라고 생각하였다. 그런데 신해년[1671] 늦여름에 아우 자익(子益)이 필마를 타고 홀로 갔다가 겨우 한 달여 만에 내금강(內金剛)과 외금강(外金剛)을 두루 구경하고 돌아왔다. 이에 나는 금강산의 절경이 꼭 한번 유람해 보아야 할 만큼 아름답고 또 유람이 그리 어렵지만은 않다고 확신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그해 8월에 백씨(伯氏)와 함께 가기로 약속하고 출발할 날짜도 잡아 두었다. 그런데 출발하기 하루 전에 백씨가 갑자기 병이 나 버렸다. 나는 혼자 가면 매우 무료하리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이미 시위 떠난 화살을 멈출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결국 11일 기축일에 부모님께 하직 인사를 올리고 출발하였는데, 김성률(金聲律), 이유굴(李有屈) 두 사람이 따라나섰다. 가지고 가는 물건 중에 다른 것은 없고 선당시(選唐詩) 몇 권과 『와유록(臥游錄)』 한 권뿐이었다.

동쪽으로 흥인문(興仁門)을 나서는데 가을 하늘이 드높고 공기가 맑은 데다 들판이 휑하게 펼쳐져, 내 마음은 벌써 표연히 산과 바다에 가 있었다. 낮에 누원(樓院)에서 점심을 먹고 축석령(祝石嶺)을 넘어가서 묵었다. 경인일 아침에 포천(抱川) 시장 거리에서 조반을 먹고 낮에는 양문역(梁門驛)에서 점심을 먹었으며 초경(初更)에 풍전역(豐田驛)에 투숙하였는데, 이곳은 철원(鐵原) 땅이었다[自兒時已聞金剛名 輒有一游之願 然居常瞻望 如在天上 意非人人所可到也 辛亥孟夏 家弟子益 匹馬獨行 甫月餘日 徧觀內外山而歸 則益信其勝 不可不一游 而游又非難也 是歲仲秋 約伯氏同往 旣卜日爲行矣 先一日 伯氏遽病 念獨行殊無聊 然業已發 不可止 遂以十一日己丑 拜辭親庭而行 從者二人 曰金聲律 李有屈 所齎無他物 只選唐詩數卷臥游錄一卷而已 東出興仁門 秋高氣淸 原野寥曠 此心已飄然在海山間矣 午炊樓院 踰祝石嶺止宿 庚寅 朝飯抱川場街里 午炊梁門驛 初更 投宿豐田驛 鐵原地也].

본문에 나오는 백씨(伯氏)는 저자 김창협의 큰형 몽와(夢窩) 김창집(金昌集)[1648~1722]이다.

[의의와 평가]

개항기의 학자 창강(滄江) 김택영(金澤榮)[1850~1927]이 우리나라의 고문가(古文家) 아홉 사람을 들면서 김창협의 이름을 빼놓지 않았듯이, 그의 문장은 고문으로 정평이 나 있었다. 그는 이전의 선진 고문가(先秦古文家)와는 달리 당송(唐宋)의 순정(醇正)한 고문을 체득하여 문장의 품격을 높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아우 김창흡(金昌翕)[1653~1722]이 “도(道)와 문(文)을 하나로 합치시켰다.”라고 한 것처럼 도와 문을 아우른 대표적인 작가로 추숭되곤 하였다.

「동유기」는 조선 시대 포천을 배경으로 한 문학 작품 가운데 포천을 지나면서 지은 기행문이다. 이외에도 매월당(梅月堂) 김시습(金時習)[1435~1493]의 「모투영평현(暮投永平縣)」, 오재순(吳載純)[1727~1792]의 「해산일기(海山日記)」 등에서 볼 수 있듯이, 포천은 한양에서 금강산을 갈 때 거쳐야만 하는 고을이라 수많은 사람들이 오고가던 무대로 여러 가지 이야기를 담고 있는 지역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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