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목차

신윤하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001128
한자 申胤夏
분야 종교/유교,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효자·열녀
지역 경기도 포천시 내촌면 음현리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전병무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685년 - 신윤하 출생
추모 시기/일시 1865년 - 신윤하 정려
정려문 신윤하 정문 - 경기도 포천시 내촌면 음현리 734-2
성격 효자
성별
본관 평산(平山)

[정의]

조선 후기 포천 출신의 효자.

[가계]

본관은 평산(平山). 학자이자 효자인 신급(申礏)의 5세손이다.

[활동 사항]

신윤하(申胤夏)는 포천에서 태어났다. 어릴 적부터 총명하여 글 읽기를 좋아하였고, 약관의 나이에 모든 경서를 독파하여 통달하였다. 점차 학문과 인품이 고매하기로 소문이 나자 이웃사람들이 조정에 나아가 벼슬을 하여 나랏일을 도울 것은 자주 권하였다. 이에 신윤하는 자신이 독신이기 때문에 부모님을 받들 사람이 없고, 지금의 국정이 소란해서 의가 땅에 떨어져 처신을 잘못하다가는 도리어 목숨을 보전하지 못할 것이라고 이유를 대면서 벼슬에 나가는 것을 극구 사양하였다. 차라리 집에서 부모를 잘 받드는 일이 진정한 효도하는 길이라고 판단하였던 것이다.

어느 해 겨울 아버지가 병을 얻어 백방으로 약을 구하여 치료하였지만 효과가 없었다. 아버지가 자리에 누운 지 오래되었는데, 한 의원이 아버지의 병에는 산 기러기의 피가 가장 좋은 약이라고 알려 주었다. 신윤하는 매일 목욕재계하고 천지신명께 기러기를 얻어 아버지의 병이 낫게 해 달라고 정성을 다하여 빌었다. 그의 정성이 하늘에 닿았는지 어느 날 우연히 기러기 한 마리가 윤하의 집에 날아들어, 그 피로 아버지의 병을 고칠 수 있었다. 이웃에서 모두 천지신명마저 감동시킨 하늘이 낳은 효자라고 칭찬이 그칠 줄 몰랐다. 후에 부모가 연로하여 세상을 떠나자 선산에 안장하고 시묘하며 효를 다하였다.

늙어서는 내촌면 음현리로 옮긴 후 처사로 살면서 자손들을 가르치고 기르는 데 여생을 보냈다.

[상훈과 추모]

1865년(고종 2)에 나라에서 효자 정문을 내렸다. 현재 포천시 내촌면 음현리 734-2신급의 효자 정문과 함께 위치하며, 향토 유적 제9호로 지정되어 있다.

[참고문헌]
등록된 의견 내용이 없습니다.
네이버 지식백과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