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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동리 산성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000913
한자 城洞里山城
이칭/별칭 성동리 성지,태봉산 산성
분야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유적(일반)
지역 경기도 포천시 영중면 성동리 산693-10
시대 고대/삼국 시대,고려/고려
집필자 김동민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문화재 지정 일시 1986년 04월 09일연표보기 - 태봉산 성지 포천시 향토 유적 제29호로 지정
발굴 조사 시기/일시 1997년 2월연표보기 - 태봉산 성지 육군사관학교 육군박물관에서 지표조사 시작
발굴 조사 시기/일시 1997년 7월연표보기 - 태봉산 성지 육군사관학교 육군박물관에서 지표조사 종료
발굴 조사 시기/일시 1999년 4월19일연표보기 - 태봉산 성지 경기도 박물관에서 정밀 지표 조사 시작
발굴 조사 시기/일시 1999년 4월31일연표보기 - 태봉산 성지 경기도 박물관에서 정밀 지표 조사 종료
소재지 성동리산성 - 경기도 포천시 영중면 성동리 산693-10 일대 (N38°1'27~32"/ E127°15'28~35")지도보기
성격 산성
문화재 지정 번호 포천시 향토 유적 제29호

[정의]

경기도 포천시 영중면 성동리에 있는 삼국 시대에서 고려 시대에 이르는 산성.

[변천]

성동리 산성(城洞里山城)의 명칭이나 축성 시기, 시설물 등에 관한 기록은 전해지지 않으며, 다만 조선 중기 이후 각 지리지에 성동리 산성으로 추정되는 옛 성의 폐성 기사만이 남아 있을 뿐이다. 이 기사들에서 성동리 산성을 나타내는 것은 “영평현 동쪽 12리 둘레 1리의 옛 석성”으로 추정된다. 조선 시대의 영평현이 현재의 성동리 산성 서쪽으로 5㎞ 정도 떨어진 포천시 영중면 영평리에 있었다고 하므로 위의 기사는 성동리 산성을 가리키는 것이라 하겠다.

한편 성동리 산성궁예(弓裔)가 축성하였다는 전설이 있다. 918년 왕건(王建)의 군대에 쫓기던 궁예가 한때 이곳에 머물렀고, 백성과 군사를 동원하여 한탄강에서 돌을 날라다 성을 급조하였으며 이러한 전설이 와전되어 ‘태봉성(泰封城)’이라고 불렀다는 것이다. 하지만 궁예와 관련된 전설을 가진 성이 포천·연천·철원 지역에만 수개에 달하는 것으로 보아 이들에 대한 면밀한 검토가 필요하다. 성의 명칭에 관해서는 성동리 산성 성내에 ‘태봉산성(胎封山城)’이라 표기한 문화재 안내판을 세워 놓았는데, 이는 이곳에 조선 순조의 세자 익종의 태(胎)[탯줄]를 안치하여 생겨난 것이라 한다.

그러나 조선 후기 영평군 지도에는 고성[성동리 산성]의 북쪽 능선에 “익종 대왕 태실”로 명확히 표기되어 있는 점이 매우 주목된다. 이러한 표기는 영평군 지도의 제작 연대[1872]와 익종이 태어난 연대[1809]가 19세기라는 점, 이 당시 고성 안에는 성황당이 위치한 점, 고지도에 명확하게 산세와 태실의 위치를 표시한 점 등에서 좀 더 신빙성 있는 기록으로 판단된다.

[위치]

성동리 산성경기도 포천시 영중면 성동리 산693-10번지 일대인 잣골 마을에 축조된 석축 산성이다. 포천에서 철원으로 가는 국도 43호선을 타고 영평천을 지나면 국도 37호선과 나누어지는 포천시 영중면 성동리 신장 삼거리에 이르게 된다. 이곳에서 철원·운천 방면으로 우회전하면 정면에 해발 180m의 잔구성(殘丘性) 산지를 만나게 된다. 성동리 산성은 바로 이 산의 8~9부 능선에 자리하고 있으며 성 남쪽의 잣골 마을을 통해 오를 수 있다.

서쪽으로는 보장산종자산이, 동쪽과 남쪽으로는 자연 해자의 기능을 하는 영평천이 동에서 서로 흐르며 포천천과 만나 한탄강과 임진강에 합류한다. 즉 포천~철원 방면의 남북 교통로와 전곡~이동 방면의 동서 교통로가 교차하는 지점을 방어하기에 가장 효과적인 요충지에 위치하고 있다.

[발굴 조사 경위 및 결과]

1998년 성동리 산성 남쪽의 영평천 변에서 삼국 시대 전기에 해당하는 생활 유적이 긴급 발굴 조사되었는데, 이 주거 유적과 인접 성동리 산성과의 연관성을 규명하기 위하여 성동리 산성에 대한 정밀 지표 조사를 계획하게 되었다. 현장 조사는 1999년 4월 19일부터 4월 31일까지 진행되었다. 조사 결과, 성동리 산성은 3~5세기 백제 축조기, 5~6세기 고구려 남진기, 6~7세기 신라 북진기, 남북국 시대 태봉국의 네 시기의 변천 과정을 거치는데, 그중 백제와 신라에서 가장 활발하게 이용한 것으로 파악되었다.

[현황]

성동리 산성은 현재 성벽 상면을 따라 군사용 교통호와 지하 참호가 조밀하게 조성되어 있으며, 성 내부에도 군사 시설이 설치된 상태이다.

[의의와 평가]

성동리 산성은 포천 지역의 관방 문화(關防文化)와 역사 지리적 위치를 대변할 뿐만 아니라 부족한 고대사의 공백을 메워 줄 만한 가치를 지니고 있는 유적이다. 포천이 갖는 전략적 중요성이 확인된 만큼 포천 일대의 역사적 성격을 더욱 명확히 밝히기 위하여 성동리 산성을 비롯한 주변의 유적에 관한 정밀한 조사가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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