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00085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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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白鷺洲巖刻文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유적(일반) |
지역 | 경기도 포천시 영중면 금주리 |
시대 | 조선/조선 |
집필자 | 김덕원 |
조성|건립 시기/일시 | 조선 시대 - 백로주 암각문 조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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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굴 조사 시기/일시 | 1996년![]() |
현 소재지 | 백로주 암각문 - 경기도 포천시 영중면 금주리![]() |
성격 | 암각문 |
관련 인물 | 양사언(楊士彦)|양만고(楊萬古)|조경(趙絅)|송시열(宋時烈) |
경기도 포천시 영중면 금주리에 있는 조선 시대의 암각문.
백로주(白鷺洲)는 영평 8경 중 하나로 알려진 유명한 경승지이다. 만세교와 금주산(金珠山)에서 흐르는 물이 합쳐지면서 수량이 풍부하고, 현재도 포천의 대표적인 휴양지로 손꼽히고 있다. 이곳 가운데에 우뚝 솟은 바위산이 있는데, 백로주는 중국 당나라의 유명한 시인 이백(李白)의 시 구절인 ‘이수중분백로주(二水中分白鷺洲)’에서 인용하여 지은 것이다.
백로주 암각문(白鷺洲巖刻文)이 위치한 지역은 포천의 명사인 양사언(楊士彦), 양만고(楊萬古), 조경(趙絅) 등을 비롯하여 송시열(宋時烈) 등이 찾아와 배를 타고 즐겨 놀던 곳이다.
국도 43호선을 따라 포천시 신북면 만세교리의 만세교를 지나서 북쪽으로 약 1.5㎞를 더 가면 백로 바위가 나오는데, 그 맞은편에 위치한다.
첫 번째 암각문의 규모는 82㎝×185㎝이며, 해서체로 “백로주(白鷺洲) 기묘추철원부사동강서(己卯秋鐵原府使東岡書)”라고 새겨져 있다. 백로주는 40㎝×45㎝의 크기로 크게 새겼고, 나머지 글자들은 15㎝×13㎝의 크기이다. 기묘년 가을 철원부사 동강이 썼다는 내용인데, 동강이 누구인지는 명확하지 않다.
두 번째 암각문의 규모는 42㎝×105㎝이며, 글자 크기는 6㎝×6㎝이다.
“산유백운주백로(山有白雲洲白鷺) 운수로거수로운(雲隨鷺去隨鷺雲) 산운주로상수처(山雲洲鷺相隨處) 아방한정공일군(我方閒情一群) 소주(素洲)”라고 새겨져 있으며, 시를 지은 소주가 누구인지는 밝혀지지 않았다.
세 번째 암각문의 규모는 58㎝×104㎝이며, 글자 크기는 21㎝×24㎝이다.
“만세립극(萬歲立極) 중성공지(衆星拱之)”라고 새겨져 있는데, 관리가 충정을 드러내기 위해 새긴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네 번째 암각문의 규모는 26㎝×120㎝이며, 글자 크기는 25㎝×25㎝이다. “평양북신(平陽北辰)”이라고 새겨져 있다.
다섯 번째 암각문은 “이승응(李承膺) 신응우(申應雨) 최□성(崔□成) 솔(率) 나유영(羅有英) 최재경(崔載敬) 조세옥(趙世玉) 위각북(爲刻北) 신석십(辰石十) 이대자(二大字) 용서(龍西) 지(志)”이라고 새겨져 있어 화봉산 암각문과 마찬가지로 용서(龍西)유기일(柳基一)이 쓴 것을 알 수 있다.
백로주 암각문은 4기가 알려지고 있었는데, 1997년 1월에 1기가 새롭게 발견되면서 현재 모두 5기의 암각문이 존재하고 있다.
백로주 암각문이 있는 지역은 양사언, 양만고, 조경, 송시열 등 포천 지역의 명사들이 와서 배를 타고 즐겨 놀던 곳이며, 현재도 포천의 대표적인 휴양지이다. 또한 1997년에 새롭게 발견된 암각문은 용서 유기일이 쓴 것으로 추정되는데, 그는 면암(勉庵) 최익현(崔益鉉)의 문하로 포천 지역에서 화서학파(華西學派)의 학풍을 잇는 대표적인 학자이다. 따라서 백로주 암각문과 포천 지역에서의 유학의 관계를 살펴볼 수 있는 좋은 자료를 제공할 것으로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