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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000717
한자 權悰忠臣門
분야 종교/유교,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건물
지역 경기도 포천시 소흘읍 고모리 32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조준호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문화재 지정 일시 1986년 04월 09일연표보기 - 포천시 향토 유적 제40호로 지정
현 소재지 권종 충신문 - 경기도 포천시 소흘읍 고모리 32지도보기
성격 정려
양식 홑처마 맞배지붕
소유자 권순묵
관리자 권순묵
문화재 지정 번호 포천시 향토 유적 제40호

[정의]

경기도 포천시 소흘읍 고모리에 있는 조선 전기 문신 권종(權悰)의 충절을 기리기 위해 건립된 정려.

[개설]

권종[1554~1592]은 포천 출신의 문신으로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이 일어나던 해에 금산 군수로 부임하여 광주 목사로 있던 사촌 동생 권율과 국난에 대처할 것을 기약하였다. 권종이 먼저 군사를 이끌고 전주에 도착하였으나, 당시 전라도 관찰사가 그의 나이가 많다는 것을 이유로 군사를 빼앗아 다른 부대에 이속시키고, 권종에게는 군량 관리의 임무를 맡게 하였다. 6월 20일 왜적이 금산군에 이르자 그곳으로 돌아가 200명도 못되는 병졸을 거느리고 제원 찰방 이극경과 합세하여 적을 기다렸다.

22일 왜적이 대거 기습하자 하루 종일 전투를 벌였으나 다음날 격전 끝에 아들 권준(權晙)과 함께 순국하였다. 순국하기 전에 권종은 임금이 있는 북쪽을 향해 재배하며 나라 잃은 슬픔을 탐복했다고 한다. 금산 군민들이 그의 충절에 감탄하여 시신을 거두어 포천 선영에서 장사지냈다. 선조가 특별히 그에게 증직으로 이조 판서에 재수하였다. 뒤에 경연에서 여러 신하들이 건의하여 충신 정려를 명해 충신각과 충신 정문을 세웠으며, 충민(忠愍)이라는 시호를 내렸다.

[위치]

권종 충신문경기도 포천시 소흘읍 고모리 32번지에 있다.

[변천]

권종 충신문은 1986년 4월 9일 포천시 향토 유적 제40호로 지정되었다.

[형태]

권종 충신각은 372×381㎝ 규모의 방형 기단 위에 170×225㎝의 규모로 홑처마 맞배지붕에 방풍판을 달아 설치하였으며, 권종 충신문은 충신각 내부에 걸어놓았다. 높이는 231㎝이며, 230×40㎝의 현판에 자경 8㎝로 다음의 글씨가 금각되어 있다. “충신 증자헌대부 이조판서 겸 지의금부사 행통훈대부 금산군수 증시충민공 권종문문선조묘증직숙묘조사시명정 상지삼십이년 임진사월일립(忠臣 贈資憲大夫吏曹判書兼知義禁府事行通訓大夫錦山郡守贈諡忠愍公權悰文門宣祖廟贈職肅廟朝賜諡命旌 上之三十二年壬辰四月日立)”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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