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목차

「포천 향약 서고문」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000652
한자 抱川鄕約誓告文
분야 역사/근현대,문화유산/기록 유산
유형 문헌/문서
지역 경기도 포천시
시대 근대/개항기
집필자 이근호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작성 시기/일시 1899년 - 「포천 향약 서고문」 최익현 작성
성격 고문서
관련 인물 최익현
용도 약조문|맹세문

[정의]

1888년 최익현(崔益鉉)이 포천 향약을 시행하면서 작성한 맹세문.

[개설]

「포천 향약 서고문(抱川鄕約誓告文)」최익현[1833~1906]이 고향인 포천 지역에서 1888년 향약을 시행하면서 작성한 글이다. 모두 5개 조항으로 이루어졌으며, 주로 그의 위정척사(衛正斥邪) 사상을 강조하는 내용이다.

[제작 발급 경위]

최익현은 1898년(고종 35) 궁내부 특진관에 제수되었으나, 박영효(朴泳孝)[1861~1939] 등을 성토하고 사직한 뒤 포천 지역에 낙향해서 생활하였다. 다음 해 춘천 등지를 돌아본 뒤 고향으로 와서 9월에 향약을 설치하여 시행하였으며, 「포천 향약 서고문」은 이때 작성된 것이다.

[구성/내용]

「포천 향약 서고문」은 모두 5개 조항으로 구성되었다. 첫째 조항에서는 향약 구성원들에게 실천을 강조하였고, 둘째 조항에서는 도통(道統)을 강조하면서 도에 순종하면 중화(中華)의 사람이 되니 죽어도 영광스럽고 이것을 어기면 오랑캐가 된다고 하여 그의 위정척사 사상을 피력하였다. 셋째 조항에서는 일본과의 국교 체결, 명성왕후의 시해 등은 천지개벽 이후에 없었던 일로, 원수를 갚아야 하지만 형편상 창을 잡고 싸울 수는 없더라도 의리를 강론함으로써 군신과 부자, 화이(華夷)와 인수(人獸)[사람과 동물]의 구별을 알게 해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넷째 조항은 단발령과 양복을 입는 것 등을 비난하면서 선비는 의리를 지키며 도를 따를 것을 강조하였다. 다섯째 조항은 향약의 시행을 맞이하여 지역 사람들이 “덕으로 서로 권하고, 예로써 풍속을 이루자.”고 하였다. 대부분의 내용이 최익현의 위정척사 사상에 입각한 것이다.

[의의와 평가]

「포천 향약 서고문」은 향약을 시행하면서 함께 작성된 맹세문이다. 현재 향약의 구체적인 내용을 확인할 수 없어, 향약 시행의 구체적인 모습을 확인하기 어렵다. 다만 이 맹세문을 통해서 보면, 최익현은 향약을 위정척사를 실현하는 사회 조직으로 구상했던 것이 아닐까 생각된다. 그런 점에서 「포천 향약 서고문」을 통해서 조선 시대의 향촌 자치 운영 조직인 향약이 변화하는 모습을 살필 수 있다.

[참고문헌]
등록된 의견 내용이 없습니다.
네이버 지식백과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