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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 박 포천」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000645
한자 答朴抱川
분야 역사/근현대,문화유산/기록 유산
유형 문헌/문서
지역 경기도 포천시
시대 근대/개항기
집필자 정흥모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작성 시기/일시 1895년 11월 25일 - 최익현이 박영세에게 서신(「답 박 포천」) 발송 시작
작성 시기/일시 1898년 9월 10일 - 최익현이 박영세에게 서신(「답 박 포천」) 발송 종료
성격 고문서
관련 인물 최익현|박영세
용도 편지

[정의]

개항기 포천 출신 최익현(崔益鉉)이 포천 군수 박영세(朴永世)에게 보낸 편지.

[개설]

「답 박 포천(答朴抱川)」[포천 박 군수에게 답한다]은 면암(勉庵) 최익현[1833~1906]이 1895년 11월 25일부터 1898년 9월 10일 사이에 당시 포천 군수였던 박영세에게 보낸 서신이다.

[제작 발급 경위]

최익현은 1895년 을미개혁으로 인해 단발령(斷髮令)이 공포되자 이에 크게 반발하였다. 그리하여 자신의 고향 포천의 군수인 박영세에게 편지를 보내 군수로서 단발령에 동요하지 말고, 이에 반대하면 포천 전역이 따를 것이라는 의견을 보이고 있다.

[구성/내용]

「답 박 포천」최익현의 문집 『면암집(勉庵集)』 권11에 수록되어 있다. 최익현은 4차례에 걸쳐 포천 군수 박영세에게 편지를 썼다. 첫 번째 편지는 1895년 11월 25일에 보냈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머리를 깎고 갓을 찢어 버리는 날에 오직 합하(閤下)만이 옛날 사군자의 기절(氣節)이 있음을 비로소 알고,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옷깃을 여미고 공경심이 일어났습니다. 진실로 이대로 추진해 가면서 더욱 힘쓰고 격려함을 더하여, 무너지는 물결 속의 지주(砥柱)처럼 버티고, 어두운 거리의 해와 별처럼 빛을 내어 비록 만부(萬夫)가 저해하고 흔들지라도 터럭만큼도 동요하지 않는다면, 포천(抱川) 전역이 오히려 일맥(一脉) 양기(陽氣)의 붙이는 바 되기에 족할 것이니, 어찌 진실로 천만번 크게 다행한 일이 아니겠습니까?[…… 始知剃頭毁冕之日 惟閤下有古士君子氣節 自不覺斂衽起敬 苟能推是以往 益加勉勵 砥柱乎頹波 日星乎昏衢 雖萬夫沮撓 不動一髮 則抱之全幅 猶足爲一脉陽氣之所寓 豈不誠萬萬大幸矣乎].”

두 번째 편지는 1895년 12월 25일에 보냈다. 그 내용은 박영세가 군수직을 사직하려 하자 이를 만류하고 있다. 세 번째 편지는 1896년 7월 6일에 보냈다. 그 내용은 박영세가 포천을 잘 다스려서 명성이 높은 것을 감탄하는 내용이다. 네 번째 편지는 1898년 9월 10일에 보냈다. 이때는 박영세가 이미 포천 군수를 그만 두었을 시기이다. 그 내용은 조정에서 최익현에게 관직을 내렸으나 이를 사양하고자 하니 당시 정승인 조두순(趙斗淳)[1796~1870]에게 이야기를 전해 달라고 부탁하고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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