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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정기문』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000626
한자 南征記聞
분야 역사/근현대,문화유산/기록 유산
유형 문헌/전적
지역 경기도 포천시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이근호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저술 시기/일시 1876년연표보기 - 『남정기문』 저술
성격 전적|논설
저자 김평묵

[정의]

1876년 포천 출신의 유학자 김평묵이 자신이 속한 학통의 논리를 변호하기 위해 작성한 책.

[저자]

김평묵(金平默)[1819~1891]의 본관은 청풍이고, 자는 치장(穉章), 호는 중암(重菴)이다. 포천의 화산면 시우촌에서 출생했고, 20세 때에는 당시 포천 현감인 성근수(成近壽)의 권유로 포천 현학(縣學)에서 수학하였다. 20대에는 양근에서 이항로(李恒老)홍직필(洪直弼) 등에게 수학하였다. 이후 포천과 춘천·가평 등지를 오가면서 생활하였다. 1876년(고종 13) 이후에는 외국과의 조약에 반대하는 척사론의 입장에서 상소를 제출하였고, 이로 인해 1881년(고종 18)에는 전라도 지도(智島)에 유배되기도 하였다. 스승인 이항로의 학문과 사상을 이어받아 실천한 화서학파의 대표적 인물이다.

[편찬/간행 경위]

『남정기문(南征記聞)』김평묵이 1876년(고종 13)에 저술한 것으로, 전우(田愚)를 비롯해 당시 학자들 사이에서 이이(李珥)송시열(宋時烈)의 견해에 이견을 제시하자, 이를 변호하기 위해 작성하였다.

[형태/서지]

『중암 문집(重菴文集)』 권38 잡저에 수록되었으며, 모두 1,635자이다.

[구성/내용]

『남정기문』이이의 성리설과 송시열의 존주론에 대한 변호 형식으로 구성되었다. 먼저 전우가 이이의 이통기국설(理通氣局說)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며 이(理)는 통하지 않고 기(氣)는 통하면서도 국한되어 개별적으로 존재한다고 하자, 이이의 이통기국설은 성인이 다시 나와도 의심하지 않을 것이라고 하면서 이이의 입장을 옹호하였다.

또한 송시열의 도학과 사공(事功)에 대해서 의심 없이 무조건 추종하는 것에 대해서는 의문을 제기하는 견해, 조성기송시열을 비교하는 견해, 서구 세력과 화의하면 의리를 비록 잃지만 종사는 보전할 수 있다는 견해에 대해서 부당함을 설파하였다.

대체로 성리학을 지키고 이단을 배척하는 위정척사의 입장에서 논리를 설명하였는데, 예를 들어 서구 세력과 화의 문제에 대해서, 의리는 요순과 공맹(孔孟) 이후 만세에 전하는 대경(大經)이라 하며 송시열의 견해를 소개하면서, 대의를 잃고 적을 섬기는 것을 참으며 설사 오랜 동안 나라가 유지된다고 하여도 천년에 불과할 것이지만 한 나라의 군신은 모두 만세의 강상죄인이 될 것이라고 하였다.

[의의와 평가]

『남정기문』이 작성된 1876년은 김평묵이 문인 홍재구(洪在龜) 등과 함께 일본과의 수호 조약 체결을 반대하는 척화소의 초고를 작성하던 시기였다. 이 저술은 이와 관련되며, 따라서 위정척사 정신을 강하게 표방하고 있다.

[참고문헌]
  • 김평묵, 『중암집』(한국 고전 번역원 한국 고전 종합DB http://db.itkc.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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