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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지 조사 사업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000582
한자 土地調査事業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지역 경기도 포천시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이계형

[정의]

1910년대 경기도 포천 지역에서 실시된 일제의 토지 소유권 조사 사업.

[개설]

일제는 1910년 9월 30일 「조선 총독부 임시 토지 조사국 관제(朝鮮總督府 臨時土地調査局官制)」를 공포하고 1912년 8월에 「토지 조사령」을 공포하였다. 일제는 전 근대적인 토지 소유 관계를 근대적으로 변화시킨다며 토지 조사 사업 방침을 내세웠지만, 식민지 통치를 위한 기초 작업으로 토지를 약탈하고 지세를 수탈하고자 하였다.

일제는 1개월간의 준비 조사를 거쳐, 1911년 11월 지적 장부 조제에 착수하고 1912년 3월 조선 부동산 등기령과 조선 민사령, 8월 토지 조사령, 1914년 3월 지세령, 4월 토지 대장 규칙, 1918년 5월 조선 임야 조사령 등을 공포하여 토지 조사사업을 진행하였다. 일제는 이 사업을 위해 8년간 2456만 원이라는 막대한 예산을 투입하였다.

[내용]

당시 경기도 포천 지역의 주산업이 농업이었기 때문에 일제의 약탈적인 토지 조사 사업은 포천 지역 농민들에게 엄청난 피해를 입혔다. 더구나 경기도는 사업 기간 동안 일본인 대지주의 토지 약탈이 극심하였다. 특히, 동양 척식 주식회사의 토지 집중이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1910~1918년 사이 경기도 내에서 동양 척식 주식회사의 토지 소유 규모 실태를 보면, 1910년 답 19.48㎢[1,964정보], 전 17.22㎢[1,737정보]로 모두 36.70㎢[3,701정보]였던 것이 1918년에는 답 48.84㎢[4,925정보], 전 36.80㎢[3,711정보], 기타 3.65㎢[368정보]로 모두 89.29㎢[9,004정보]로 증가하였다. 토지 조사 사업이 실시되는 1910~1918년 사이에 답은 29.37㎢[2,961정보], 전은 19.58㎢[1,974정보], 여기에 기타 3.65㎢[368정보]를 포함하여 모두 52.60㎢[5,303정보]가 증가한 것이었다.

더욱이 동양 척식 주식회사가 소유한 토지는 그 일부를 일본인 농업 이주자에게 할당함으로써 경기도 지역에는 점차 일본인 이주자가 증가했고, 이들은 고율의 소작료와 함께 등 갖은 수단으로 소작농을 착취하였다. 결국 대다수 한국 농민들은 점차 토지를 잃고 몰락한 반면에 일본인들은 약탈적인 방법으로 토지를 집중시키면서 한국 농민을 수탈한 것이었다. 이는 경기도 내 대부분의 지역에서 일어난 공통적인 현상이었다. 따라서 당시 경기도 포천 지역 농민들의 반일 감정이 극도로 악화됨과 더불어 정치적·사회적 의식이 점차 고조되면서 3·1 운동으로 표출되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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