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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흥회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000580
한자 進興會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지역 경기도 포천시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신대광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설립 시기/일시 1931년 - 진흥회 설립
해체 시기/일시 1940년연표보기 - 진흥회 해체
성격 농촌 진흥 단체

[정의]

일제 강점기 경기도 포천 지역에 있었던 관변 농촌 진흥 단체.

[개설]

일제는 농촌 진흥 운동을 효과적으로 실시하기 위해 각 지역별로 대표적인 관변 단체로 기능할 농촌 진흥회를 조직하였다. 그리고 이를 통해 농촌 부락들을 지배해 나갔다.

[설립 목적]

일제 강점기 조선 총독부의 농촌 진흥 운동 방침에 따라 농촌 진흥과 농민의 자력갱생을 목표로, 각 지역의 관공서가 중심이 되어 지역 위원회를 조직하고, 해당 지역의 하부 위원회를 조직하여 식민지 지배 체제를 안정시키고자 하였다.

[변천]

1920년대 중반 이후 다양한 명칭의 진흥회가 존재하였는데, 포천군에서는 군내면 구읍리에서 유동옥(柳同玉), 이주호(李周鎬) 두 사람의 발기로 1931년 12월 10일 진흥회가 조직되었다. 설립 목적은 농촌 청년 지도와 부업 장려였으며, 가장 먼저 실행한 것은 회원들의 금주(禁酒)와 가마니 짜기였다. 설립 당시 회원은 20명이었고 회장은 유동옥, 부회장은 이주호, 감독은 임기영(林基榮)과 유명순(柳明淳)이었다. 이어 1932년 10월 포천군은 군내 각 촌락에 농촌 진흥회를 287개소를 조직하여 지도하였다. 이후 1940년 농촌 진흥회는 국민 총력 조선 연맹 산하의 부락 연맹으로 재편되었다.

[주요 사업과 업무(활동 사항)]

각 부락에서 실시한 주요 사업 내용은 색의 장려, 관혼상제 비용 절약, 부락 청결, 납세 기준일 준수, 문맹자 교육, 단발 권장 등이었다. 한편 경기도 포천군 군내면 구읍리에서는 진흥회 주최로 1932년 11월 20일부터 김덕배 잠실에 야학을 개설하여 산술, 조선어 등을 교수하였다. 당시 활동한 교사는 최재은, 김종국, 박용석 등이었다. 40명의 남녀 아동이 배웠고 성적이 양호하였다. 동절기인 농한기에도 문맹 퇴치 활동과 함께 동절기 작업을 적극 장려하였다. 1932년 군내의 야학은 264개소에 이르렀으며, 학생 수는 남녀를 합하여 4,914명에 달하였다. 교수 과목은 조선어, 산술 등이었다.

[현황]

포천군 당국에서 조직하기로 결정한 부락은 259개소에 달하였다. 각 면별로는 서면 22개, 군내면 24개, 내촌면 15개, 가산면 21개, 소흘면 18개, 신북면 15개, 청산면 11개, 창수면 23개, 영중면 34개, 영북면 19개, 이동면 13개, 일동면 25개였다.

[의의와 평가]

일제는 농촌 진흥회를 통하여 농촌 진흥 운동을 확대하면서 농촌 부락들을 지배해 나갔다. 이후 농촌 진흥회는 전시 동원 체제에 전쟁 물자와 노동력을 수탈하는데 큰 역할을 하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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