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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 야학 운동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000553
한자 勞動夜學運動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지역 경기도 포천시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김도형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특기 사항 시기/일시 1927년연표보기 - 포천 산업 청년회가 포천 청년단으로 개칭
특기 사항 시기/일시 1920년대 - 다수의 청년 단체 설립

[정의]

일제 강점기 경기도 포천 지역에서 전개된 근로 대중 교육 및 계몽 운동.

[개설]

노동 야학 운동은 농촌 계몽 운동의 일환으로서 1920년대 농촌 지역에서 농민들을 계몽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였다. 경기도 포천 지역에서는 1927년 12월 25일 포천 산업 청년회(抱川産業靑年會)에서 배움의 기회를 갖지 못한 지역 노동 청소년들을 위해 야학을 개설했던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노동 야학은 문맹 퇴치와 경제 자립을 위한 교육을 주 내용으로 했으나, 민족주의 교육도 중점적으로 실시하는 노동 야학도 일부 있었다. 일제 강점기 노동 야학은 사설 야학과 관립 야학으로 구분해 볼 수 있다. 관립 야학은 행정 당국이 일본어 보급을 목적으로 공립 보통학교의 부수 사업으로 운영된 것이었고, 사설 야학은 노동자·농민·부녀자 등 소외 계층을 위한 농촌 계몽 운동을 목적으로 운영되었다.

당시 경기도 포천 지역은 어느 지역보다도 민족의식이 강한 지역이었다. 그래서 노동 야학 운동이 비록 농민 계몽이 주목적이었지만 민족 교육의 배경이 된다는 점에서 청년 단체 및 각 지역 유지들의 적극적인 후원과 농민들의 열의가 합쳐져 활발하게 전개될 수 있었다.

포천의 노동 야학 운동은 우선 청년 단체와 그 회원들에 의해서 주도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1920년대에는 각 지역에서 많은 청년 단체들이 조직되었고 이들의 주요 사업 중의 하나가 야학 활동이었다. 『동아 일보』의 한 사설에서도 당시 청년회의 사업 중에 가장 긴급한 과제를 지식 보급, 덕육 사업, 산업 장려 등이었는데, 여기서 지식 보급을 위한 청년회 활동이 바로 야학 활동이었다.

경기도 포천에서도 1920년대에 많은 청년 단체가 조직되었는데 그 대표적인 것으로는 포천 청년회(抱川靑年會), 포천 산업 청년회(抱川産業靑年會), 송우 청년단(松隅靑年團) 등을 들 수 있다. 포천 산업 청년회는 1927년에 포천 청년단(抱川靑年團)으로 변경되었다. 이들 청년 단체들이 포천 지역의 노동 야학을 얼마만큼 주도했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농민 계몽, 운동 대회 개최 등에 관한 활동을 활발히 전개했던 것으로 보아 노동 야학도 적극적으로 주도했을 것으로 보인다.

포천 산업 청년회에서는 1927년 12월 25일 오후 7시부터 청년 회관에서 노동 야학을 개설하고 노동 청소년들 10여 명에게 일상생활에 필요한 과정을 가르치는 등의 교육 활동을 전개하였다. 이에 포천의 일반 무산 노동 청소년들 다수가 입학하기를 희망하는 등 성황리에 교육 활동이 이루어지게 되었다. 교사로는 김옥진(金玉鎭)·김흥갑(金興甲)·김귀봉(金貴鳳)·김해동(金海東) 등이 있었다.

노동 야학 운동은 배우지 못한 농민들의 문맹 퇴치가 주목적이었지만 조선 본위의 교육이라는 점에서 궁극적으로는 민족의식을 고취시키고 간접적인 민족 역량을 기르는데 크게 기여하였다. 따라서 노동 야학 운동은 3·1 운동 이후 국내에서 지도층 인사들의 민족 운동이 전반적으로 쇠퇴해가는 상황에서 농민층을 중심으로 한 민중들이 민족 해방 운동의 주체로 성장하는데 큰 역할을 했다고 할 수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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