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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주 감무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000538
한자 抱州監務
이칭/별칭 포주감무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제도/관직
지역 경기도 포천시
시대 고려/고려 후기
집필자 김성환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제정 시기/일시 1106년연표보기 - 포주 감무 설치
폐지 시기/일시 1413년연표보기 - 포주 감무 폐지
관할 지역 포주 감무 - 경기도 포천시

[정의]

고려 시대부터 조선 전기까지 포천 지역에 파견된 지방관.

[개설]

고려 초 이후 중앙 집권 체제에 의한 통치권의 범위가 점차 지방으로 확대되면서 중앙의 관원을 파견하지 못하던 속군현(屬郡縣)과 향(鄕)·소(所)·부곡(部曲) 등 말단 지방 행정 단위에 1106년(예종 1)부터 현령보다 낮은 지방관인 감무(監務)를 파견하였다. 조선 건국 이후 1413년(태종 13) 감무를 현감으로 개칭할 때까지 200여 군현에 두었다.

[내용]

감무가 설치되기 이전 포주에는 995년(성종 14) 단련사(團練使)가 파견되었다가 1005년(목종 8) 폐지되었다. 또 1018년(현종 9) 양주에 내속되었다가 1172년(명종 2) 포주에 감무가 설치된 것은 상주목·나주목의 속군현을 중심으로 한 49개 군현에 감무가 파견될 때였다. 포주 감무(抱州監務)는 조선 초 지방 제도 정비와 함께 유지되다가, 1413년 조세의 확보와 재지 세력의 통제를 위해 불합리한 군현 제도 승격 방법을 타파하고, 전지(田地)와 인구의 많고 적음에 따라 군현 구획을 실시하는 대폭적인 개편 과정에서 포주 감무도 포천 현감으로 개칭되었다.

감무는 과거 급제자를 임명하는 것이 원칙이었고, 그 품계는 고려 문종 때 주현(主縣)에 파견된 7품 이상의 현령보다 한 품계 낮게 책정되었다. 무인 집권기에는 집권자의 측근 등이 발탁되어 여러 폐단을 야기하였는데, 이를 막기 위해 1353년(공민왕 2) 경관(京官) 7품 이하의 과거 급제자를 임용한다고 규정하였다. 1359년에는 현령·감무는 안집별감(安集別監)이라 하여 5·6품으로 삼았는데, 현령은 5품, 감무는 6품으로 추측된다. 이로 미루어 포천의 감무 역시 그대로 적용되었다. 포주 감무의 역임자로는 조선 초기 변희(卞熙)가 확인된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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