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시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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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는 양반 사회였다. 따라서 양반은 사회의 지도적 위치에 있었다. 양반을 사대부(士大夫)라고도 하는데, 이는 사(士)와 대부(大夫)를 통칭한 말이다. 조선 후기 실학자 박지원(朴趾源)은 소설 「양반전」에서 “글을 읽는 사람을 선비[士]라 하며, 벼슬길에 나아가서 대부(大夫)가 된다.”라고 하였다. ‘선비’란 벼슬하지 않고 글을 읽으며 공부하는 사람이라고 풀이할 수 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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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의 중심에 위치한 포천 지역의 선사 시대부터 현대까지의 역사 개관. 포천 지역은 한탄강을 따라 서북 지역 또는 한강 하류 지역과 연결되고, 추가령 지구대를 따라 동북쪽으로 주민의 이동로가 펼쳐져 있다. 사방으로 교차적인 위치에 있어서 문화적인 교류가 많았다는 것이 선사 시대의 문화상에서도 관찰되고 있다. 포천의 선사 문화는 한강의 상류 지역과 서해의 도서 지역, 동해안의 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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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포천 지역에 은거한 문신.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군실(君實), 호는 수우당(守愚堂). 세종의 넷째 왕자 임영 대군(臨瀛大君)의 후손으로 증조할아버지는 영양군이고, 할아버지는 청화군(淸化君)이며, 아버지는 한음군(漢陰君) 이현(李俔)이다. 이시백(李時白)[?~1649]은 어려서부터 정직하고 효성스러웠다. 아홉 살 때 아버지가 병이 들자 손가락을 깨물어 피를 내어 입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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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포천시 가산면 정교리에 있는 조선 후기 문신 이시백 부부의 묘와 묘비. 이시백(李時白)[1571~1649]의 자는 군실(君實)이고, 호는 수우당(守愚堂)이다. 1609년(광해군 1) 사마시에 합격하고 벼슬길에 나가갔다가 인목 대비(仁穆大妃) 폐위 사건으로 사직하였다. 병자호란 중에는 감찰로 왕을 강화도로 모셨다. 1630년(인조 8) 충청도 영동 현감(永同縣監)으로 나갔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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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포천 출신의 무신. 본관은 한양(漢陽). 한천 부원군(漢川府院君) 정온(鄭溫)의 9세손으로 아버지는 정제이다. 조득남(趙得男)[1594~1636]은 포천현에서 동쪽으로 20리[8㎞] 떨어진 설악산 아래 지금의 경기도 포천시 화현면 화성리에서 출생하고 성장하였다. 어려서부터 천성이 어질고 효성스러웠으며, 기골이 장대하고 용력(勇力)이 뛰어나 주위의 촉망을 받으며 자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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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포천시 가산면 마산리에 있는 조선 후기 장군 조득남(趙得男)의 정려비. 조득남의 본관은 한양으로, 아버지는 조정제이며, 포천의 화현면 운악산 아래에서 성장하였다. 1636년(인조 14) 병자호란 때 왕을 모시고 남한산성에 들어가 이시백(李時白)의 휘하에서 북문을 지키며 결사 항쟁하면서 수차례 승리를 거두었으나 수적인 열세를 극복하지 못하고 전사하였다. 조득남 장군의 정려비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