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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흡 이야기」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002054
한자 金昌翕-
분야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유형 작품/설화
지역 경기도 포천시 영중면
집필자 이병찬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수록|간행 시기/일시 2000년 - 「김창흡 이야기」 『포천의 설화』 수록
채록|수집|조사 시기/일시 2000년 09월 22일 - 「김창흡 이야기」 이병찬이 양기성에게 채록
채록지 「김창흡 이야기」 - 경기도 포천시 영중면 금주 4리
성격 인물담
주요 등장 인물 김창흡
모티프 유형 은거하기

[정의]

경기도 포천시 영중면 지역에서 김창흡(金昌翕)과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개설]

「김창흡 이야기」김창흡[1653~1722]이 진사시에 합격하였지만 벼슬에 나아가지 않고 은거하며 지냈다는 인물담이다. 경기도 포천시 창수면 금수정 주변과 일동면안동 김씨 후손들이 많이 살고 있다. 그 집안의 인물로는 흔히 김수항(金壽恒)[1629~1689, 김상헌(金尙憲)의 손자]의 세 아들인 김창집(金昌集)[1648~1722], 김창협(金昌協)[1651~1708], 김창흡을 손꼽는다. 이 가운데 셋째인 김창흡은 호가 삼연(三淵)이다. 그는 벼슬을 하지 않고 영평(永平)에 은거하여 지냈다.

[채록/수집 상황]

2000년 이근영·이병찬 등이 엮고 포천 문화원에서 간행한 『포천의 설화』에 수록되어 있다. 이는 2000년 9월 22일 이병찬이 경기도 포천시 영중면 금주 4리로 현지 조사를 나가 주민 양기성[남, 72]으로부터 채록한 것이다.

[내용]

예전에 김창흡이라는 은자가 있었다. 안동 김씨인데, 아버지가 영의정을 지내신 김수항이다. 안동 김씨네서 영의정을 지냈던 사람이 열다섯이고, 판서를 지낸 사람이 서른여섯 명이나 된다. 그러니 이조 500년 동안 70년에 걸쳐 안동 김씨가 나라를 섭정한 셈이다.

안동 김씨가 전에는 구안동이었는데 지금은 신안동이다. 김창흡김수항의 셋째 아들로서 한시를 5000수나 지었을 만큼 문장의 대가였다. 벼슬할 기회도 많았고 과거도 몇 번을 봐서 장원까지 했다. 그런데도 정계에 나가지 않고 평생을 숨어서 살았다. 처음 은거한 곳이 사면 폭포여서 호를 ‘사면’이라 했다.

김창흡이 밖으로만 나돌기는 하였으나 혼인은 당대 최고의 권력가인 연안 이씨의 현손 딸과 했으며, 학자로서 또한 은자로서 정평이 나 있었다. 당시는 시대적 상황이 성리학에 치우쳐 있을 때임에도 불구하고, 실학에 몰두해 은거를 자처했다.

[모티프 분석]

「김창흡 이야기」의 주요 모티프는 ‘은거하기’이다. 「김창흡 이야기」는 실학에 몰두하여 문장으로 널리 이름을 떨쳤지만 평생 은자(隱者)로 숨어 살았던 김창흡을 대상으로 그를 소개하는 인물담이다. 김창흡은 그의 뛰어난 학문의 업적으로 인하여 사후에는 이조 판서에 추증되기도 하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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