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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주 유고』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000690
한자 龍洲遺稿
분야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기록 유산
유형 문헌/전적
지역 경기도 포천시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김성환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간행 시기/일시 1703년연표보기 - 『용주 유고』 간행
편찬 시기/일시 1674년 10월연표보기 - 『용주 유고』 편찬
소장처 규장각 한국학 연구원 - 서울특별시 관악구 신림동 산56-1
성격 문헌|전적
저자 조경(趙絅)
편자 조위봉(趙威鳳)
간행자 조구원(趙九畹)
권책 23권 9책
규격 21.5×16.5㎝

[정의]

1703년 간행된 포천 출신의 학자이자 문신인 조경의 문집.

[저자]

조경(趙絅)[1586~1669]은 조선 중기 포천 출신의 학자이자 문신이다. 본관은 한양, 자는 일장(日章), 호는 용주(龍洲)·주봉(柱峰). 봉사(奉事) 조익남(趙翼男)의 아들, 윤근수(尹根壽)의 문인이다.

1612년(광해군 4) 사마시에 합격했으나, 광해군의 난정으로 대과를 단념하고 거창에 은거하였다. 1623년 인조반정 후 유일(遺逸)로 천거되어 고창 현감·경상 도사 등에 임명되었으나 사양하다가 형조좌랑·목천 현감 등을 지냈다. 1626년(인조 4) 정시 문과에 장원하여 청요직을 지냈고, 정묘호란이 일어나자 강화론을 주장하는 대신들과 강경하게 논박하였다.

병자호란 때는 사간으로 척화를 주장하였고, 이듬해 집의로 일본에 청병할 것을 상소하였으나 수용되지 않았다. 1643년 통신 부사로 일본에 다녀왔고, 이조판서·형조판서 등을 거쳐 1650년 청나라가 사문사(查問使)의 척화신에 대한 처벌을 요구하여 영의정 이경석(李景奭)과 의주 백마산성(白馬山城)에 안치되었다가 이듬해 풀려나왔다. 1653년 회양 부사를 지내고 포천에 은퇴하였다. 1661년 판중추부사로 윤선도(尹善道)의 상소를 변호하다가 대간의 논박을 받고 파직되었다. 시호는 문간(文簡)이다.

[편찬/간행 경위]

1671년 허목(許穆)이 지은 신도비명에 문집 10권이 가장되어 있다고 하였다. 조경의 아들 조위봉(趙威鳳)과 손자 조구원(趙九畹)의 묘갈명에 의하면, 남인이 정권을 잡게 되었던 1674년 10월 조위봉이 능주 목사로 부임하면서 조경의 유문을 간행할 계획으로 문집을 교정·편차하고 선사(善寫)해 두었으나 간행하지 못하였다. 그 후 1703년 조구원(趙九畹)이 순천 부사로 가면서 5개월 동안의 노력 끝에 문집을 간행하였다.

이외에 『용주 일기』가 전하는데, 정묘호란시의 기록을 담은 「정묘 일기」, 1635년 암행어사로 전라도를 순찰한 「을해 남정 일기(乙亥南征日記)」, 병자호란시의 기록을 담은 「병정 일기(丙丁日記)」, 효종 초의 복잡한 청나라 관계를 기술한 「경인 일기(庚寅日記)」, 1651년(효종 2)의 정치·사회의 기록을 수록한 「신묘 일기(辛卯日記)」로 구성되어 있다.

[형태/서지]

23권 9책의 목판본으로, 크기는 21.5×16.5㎝이다. 규장각 한국학 연구원에 소장되어 있다.

[구성/내용]

『용주 유고(龍洲遺稿)』에는 부록이나 서발(序跋)은 없다. 권1~권5에는 630여 수의 시가 시체별·연대순으로 편차되어 있는데, 권1은 오언 절구 14편, 칠언 절구 52편, 오언 율시 87편이고, 권 2~권4는 칠언 율시 422편, 권5는 오언 고시 43편, 칠언 고시 17편이다. 이 중 「정축 동지 유감(丁丑冬至有感)」·「회계편(會稽篇)」은 호란을 겪은 뒤 명나라에 대한 애상과 청에 대한 복수심을 드러낸 작품이다.

권6~권10은 소차(疏箚) 86편, 계사(啓辭) 26편이다. 그 중 「응지소(應旨疏)」는 윤선도를 변호하는 내용으로 물의를 일으켜 서인들의 배척을 받게 되었다. 권11은 서(序) 20편, 기(記) 5편으로, 동인과 남인의 문집 서문이 많이 실려 있다. 권12는 발(跋) 8편, 변(辨) 1편, 설(說) 4편, 잡저이고, 권13은 제문 31편, 기우제문 9편이다. 권14~권21은 묘지 6편, 묘갈 27편, 묘표 2편, 신도비명 20편으로 모두 55명의 묘도문이고, 권22는 시장(諡狀)이다. 권23은 동사록(東槎錄)이다.

[의의와 평가]

『용주 유고』는 당대 남인의 영수로 활동하던 저자의 학문과 사상을 살필 수 있는 기초 자료이다. 특히 당파와 관계없이 폭넓은 교류 관계를 형성하고 있는 모습을 엿볼 수 있다. 「동사록」에서는 당시 조선의 일본에 대한 이해 수준을 가늠해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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