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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중로 정사공신교서 및 초상 - 이중로 정사공신교서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000653
한자 李重老靖社功臣敎書-肖像-李重老靖社功臣敎書
분야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기록 유산
유형 문헌/문서
지역 경기도 포천시 창수면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장덕호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작성 시기/일시 1625년 - 이중로 정사공신교서 및 초상 - 이중로 정사공신교서 발급
특기 사항 시기/일시 2009년 - 이중로 정사공신교서 및 초상 - 이중로 정사공신교서 보존 처리
문화재 지정 일시 1993년 11월 5일연표보기 - 이중로 정사공신교서 및 초상 - 이중로 정사공신교서 보물 제1174-1호로 지정
문화재 지정 일시 2021년 11월 19일 - 이중로 정사공신교서 및 초상 - 이중로 정사공신교서 보물 재지정
관련 사항 시기/일시 2000년 07월 21일 - 이중로 정사공신교서 및 초상 - 이중로 정사공신교서 청해 이씨 세망공파 종중에서 경기도 박물관에 기증
소장처 경기도 박물관 - 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상갈로 6
성격 고문서
관련 인물 이중로|김류|이괄|인조
용도 교서
문화재 지정 번호 보물

[정의]

경기도 포천시 창수면에 거주하던 이중로(李重老)의 후손이 소유했던, 1625년 이중로에게 발급된 공신 교서.

[개설]

이중로 정사공신교서 및 초상 - 이중로 정사공신교서는 가의대부 강화부윤 증자헌대부 병조판서(嘉義大夫江華府尹贈資憲大夫兵曹判書) 겸(兼) 지의금부사 오위도총부 도총관(知義禁府事五衛都摠府都摠管) 청흥군(靑興君) 이중로[1577~1624]에게 책훈(策勳)된 교서이다. 「이중로 정사공신교서」는 경기도 포천시 창수면에 거주하는 후손이 보관하여 오다가 2000년 7월 경기도 박물관에 기증하였다.

이중로는 개국 공신(開國功臣)인 청해백(靑海伯) 이지란(李之蘭)[1331~1402]의 후손으로 이괄(李适)[1587~1624]의 난 때에 경기·강원 양도(兩道)의 방어사(防禦使)가 되어 이성부(李聖符)와 함께 예성강 상류인 마탄(馬灘)에서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쳤다. 16세에 무과에 급제하고, 이듬해 선전관(宣傳官)이 되고, 1621년(광해군 13) 이천 부사(伊川府使)가 되었다. 1623년(인조 1) 김유(金瑬)[1571~1648]·이귀(李貴)[1557~1633] 등과 인조반정(仁祖反正)에 참여하여 정사공신 2등에 녹훈되었으며, 청흥군에 봉군(封君)되었다. 경기도 포천시 창수면 추동 2리 402번지이중로의 영정이 봉안된 청해사(靑海祠)와 묘가 있다.

[제작 발급 경위]

정사공신은 1623년(광해군 15)에 일어난 인조반정의 공신에게 내린 훈호(勳號)로, 1623년(인조 1)에 인조를 옹립하는데 공을 세운 53명의 공신들에게 봉해진 칭호이다. 그러나 공신 책봉이 공정하지 못했고, 특히 반정 때 군사를 이끌었던 이괄이 2등 공신에 책록되어 이에 불만을 품고 후에 이괄의 난이 일어나는 원인이 되기도 했다. 즉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에는 정사공신이 총 53명으로 1등에 김류(金瑬) 등 10명이 녹훈되었으나 이들 중 이흥립(李興立)[?~1624]과 2등인 이괄, 3등인 김원량(金元亮)[1589~1624]은 이듬해 공신 포상에 불만을 품고 발생한 이괄의 난에 연루되어 삭제되었는데, 이 교서는 이괄의 난이 평정된 직후에 발급된 것이어서 이 난과 직접 관련이 있는 3명은 제외되었다.

또한 김자점(金自點)[1588~1651]과 심기원(沈器遠)[?~1644] 2명은 후에 역모로 폐출 삭탈(削奪)되어 7명이 되었으므로 정사공신은 총 48명이 된다. 이 교서에는 폐출된 이들 두 사람 이름이 기재되어 있으며, 이들 이름 위에 묵서로 원(圓)이 그려져 있어 삭제된 후에 표시한 것으로 보인다.

[형태]

이중로 정사공신교서 및 초상 - 이중로 정사공신교서는 두루마리[卷子本] 형식의 필사본 1축으로 닥종이 바탕에 비단으로 배접되어 있으며, 교서의 전후 상하 일부에 남색으로 염색된 천을 입혔고, 교서 끝에는 목재 축이 달려 있어 교서를 말아 보관하기 편리하도록 되어 있다. 테두리는 붉은 주선으로 둘렀으며, 상하 2.5㎝ 간격으로 80개의 주선 안에 묵서로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교서의 이면(裏面)에는 한인급(韓仁及)[1583~1644, 인조반정 후 병조 좌랑, 개성부 유수 역임] 제(製), 임광(任絖)[1579~1644, 한성부윤 역임] 서(書)란 두 줄의 글이 쓰여 있어 이 교서의 제작자와 필서자의 이름을 밝히고 있다. 말미의 인기(印記)는 시명지보(施命之寶)이다. 전체 크기는 가로 263.1㎝, 세로 39.5㎝이며, 내용 부분의 크기는 가로 200㎝, 세로 37.3㎝이다.

[구성/내용]

이중로 정사공신교서 및 초상 - 이중로 정사공신교서는 1625년(인조 3) 4월에 반정에 참여한 훈신(勳臣)에게 발급된 것으로, 이중로는 2등 공신에 책훈되었다. 2등인 이중로에게는 포상(褒賞)으로 도상(圖像)을 그려 후세에 길이 남기고 관직은 2계급을 올려 주고, 부모·처자에게도 2계급을 올려 주고, 장자에게는 작(爵)을 세습토록 하여 끊어지지 않게 하며, 영세토록 죄를 용서하고, 자식이 없을 경우에는 생질(甥姪)이나 여서(女壻)에게 초급(超級)하고, 반당(伴倘)[경성 관아 사역 노비] 6명, 노비 9명, 구사(丘史)[공신에게 하사하는 지방 관아 노비] 4명 그리고 전(田) 80결(結), 은(銀) 30량(兩), 표리(表裡)[임금이 신하에게 내리거나 신하가 임금에게 바치던 옷의 겉감과 안감] 1단(段), 내구마(內廐馬)[내사복시에서 기르던 말] 1필 등을 하사토록 교시(敎示)하고 있다.

교서의 내용은 크게 3단락으로 나누어지는데 첫째, 이 교서를 내리게 된 경위를 밝힌 후 이중로의 충성심을 서술하고, 마지막으로 신하로서 국가와 국왕에 대한 서약을 다짐하고 있다. 둘째, 공신에 대한 포상 내용을 구체적으로 서술하고 셋째, 정사공신 1등에서 3등까지의 명단을 열거하고 있는데 1등은 김류 등 9명, 2등은 이중로 등 14명, 3등은 박유명 등 27명으로 총 50명의 공신 명단을 표기하였다.

[의의와 평가]

이중로 정사공신교서 및 초상 - 이중로 정사공신교서는 인조반정과 이괄의 난, 조선 후기 새로운 공신 세력의 등장 등 정치적 변화를 살필 수 있는 중요한 자료이다. 특히 교서의 포상 내용대로 이중로의 초상도 함께 전하고 있어 정사공신 당시 공신 도상의 연구에도 일조하는 중요한 문화재이다. 1993년 11월 5일 보물 제1174-1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보물로 재지정되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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