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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 독립 촉성 국민회 포천 지부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000555
한자 大韓獨立促成國民會抱川支部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지역 경기도 포천시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김도형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설립 시기/일시 1946년연표보기 - 대한 독립 촉성 국민회 포천 지부 결성
성격 정치 단체

[정의]

1946년 경기도 포천 지역에서 설립된 대한독립촉성국민회 소속 지부.

[개설]

대한 독립 촉성 국민회는 조국의 완전 독립을 달성할 때까지 강력하면서도 영구적인 조직체를 만들 목적으로, 기존의 반탁(反託) 운동 단체인 이승만(李承晩) 중심의 독립 촉성 중앙 협의회와 김구(金九) 중심의 신탁 통치 반대 국민 총동원 중앙 위원회가 통합하여 1946년 2월에 발족했으며 이승만이 총재, 김구가 부총재를 맡았다. 이와 함께 경기도 포천에도 지부가 결성되어 경기 북부 지역에서 중추적으로 활동하였다.

대한 독립 촉성 국민회는 약칭하여 독촉국민회(獨促國民會)라고도 했으며, 중앙에 이어 전국의 시·도·군까지 조직을 확대하고 청년대를 설치하여 전위 부대로 활동하게 하는 등 정당이 아닌 국민운동 단체로서 방대한 조직을 형성하였다. 하지만 조직이 방대해지자 이승만을 추종하던 독립 촉성 중앙 협의회 계열과 김구의 한국 독립당 계열, 김규식(金奎植)을 추종하는 계열 외에도 신익희(申翼熙)의 정치 공작대 세력 등 수많은 계열이 파쟁으로 인하여 인화와 융합을 이루지 못하고 발족 직후부터 간부 진영의 개편이 수없이 되풀이 되었다.

[설립 목적]

설립 당시 채택한 선언문에는 “① 우리는 대한의 완전 자주 독립을 위하여 최후까지 싸울 것을 선언함. ② 우리의 운동은 정당·정파를 초월한 순연(純然)한 국민운동임을 선언함. ③ 우리는 남북과 좌우의 통합을 기하여 사상적으로나 지역으로나 통일완수를 위하여 사력을 다할 것을 선언함.”이라는 내용이 수록되어 있었다. 따라서 대한 독립 촉성 국민회 포천 지부도 이에 부합하는 활동을 전개하기 위해 설립되었을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변천]

1946년 2월에 발족했으나 4월 10일에 열린 제1차 전국 대표자 회의에서 조직이 개편되면서 회장에 이시영(李始榮), 부회장에 오하영(吳夏英)·이규채(李圭彩)가 선임되었다. 같은 해 9월 16일 열린 전국 대표자 대회에서는 위원장제로 개편되어 위원장에 조성환(曺成煥), 부위원장에 정인보(鄭寅普)가 선임되었다. 그리고 1947년 4월 19일에 열린 전국 대표자 대회에서는 위원장에 오세창(吳世昌), 부위원장에 명제세(明濟世)·백남훈(白南薰)이 선임되었으며 10월 3일 열린 전국 대표자 대회에서는 위원장에 신익희, 부위원장에 명제세·백남훈이 선임되었다.

이 과정에서 대한 독립 촉성 국민회는 임시 정부를 받들어 자율 정부로 대신하자는 임시 정부 봉대파(奉戴派)와 남한만의 총선거로 단독 정부를 수립해야 한다는 이승만 계열의 주장으로 의견이 분열되었다. 그리고 미소 공동 위원회가 결렬되자 이승만 계열의 우익 국민운동 조직으로 변화하며 남한만의 단독 정부 수립을 추진하는 이승만의 지지 세력으로 변질되었다.

[주요 사업과 업무(활동 사항)]

민족주의 진영의 공동된 목표로서 경기도 포천 지역을 중심으로 범국민적인 반탁 운동과 미소 공동 위원회의 활동 반대, 좌익 운동의 봉쇄 등과 관련된 사업과 업무를 수행했으나 중앙 조직의 내부 분열로 인해 실제적인 효력을 거두지는 못하였다.

[현황]

발족 당시 대한 독립 촉성 국민회의 임원진은 총재 이승만, 부총재 김구·김규식, 고문 권동진(權東鎭)·김창숙(金昌淑)·함태영(咸台永)·조만식(曺晩植) 등으로 구성되었다.

[의의와 평가]

대한 독립 촉성 국민회는 해방 이후 분열된 민족주의 진영을 통합하기 위해 이승만김구, 김규식 등이 손을 잡고 출범시킨 단체로서 한 목소리로 반탁 운동을 전개했으나 내부적으로 파벌 간의 분쟁이 심화되면서 통합 단체로서의 역할과 기능을 다하지 못하는 한계를 가졌던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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