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140125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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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田二豊 |
영어음역 | Jeon Ipung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경상남도 양산시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정은정 |
[정의]
일제강점기 경상남도 양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활동사항]
전이풍(田二豊)은 1920년에 조직된 양산청년회의 일원으로 활동해오던 중 1927년 신간회의 결성과 더불어 양산에서도 청년 운동 및 사회 운동 전반에 변화가 나타나기 시작할 즈음 이 지역의 주도적인 인물로 부상하였다. 1927년 6월의 긴급 총회를 통하여 양산청년회의 기존 간부들이 총사직함과 동시에 전이풍이 김기오(金基午), 전병한(全秉翰), 정진호(鄭進浩), 백룡관(白龍寬), 권연구(權淵龜), 김룡호(金龍浩) 등과 함께 신임 집행위원으로 선출되었던 것이다.
또한 1928년 1월 양산청년동맹위원 및 지역 유지 여러 명이 주도한 신간회 양산지회의 창립모임에서도 전이풍은 전병건(全秉健), 김기오(金基午), 엄주화(嚴柱和), 이기주(李基周), 변한준(邊翰俊), 김철수(金喆壽) 등과 함께 설립 준비 위원으로 선정되었다. 뿐만 아니라 전이풍은 1920년대 후반기에는 조선일보 양산지국의 기자로도 활동하였으며, 1930년부터 1931년 사이에는 동아일보 양산지국의 기자와 지국장을 역임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