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140104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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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彌陀庵 |
영어음역 | Mitaam |
영어의미역 | Mitaam Hermitage |
분야 | 종교/불교 |
유형 | 기관 단체/사찰 |
지역 | 경상남도 양산시 소주동 산 171[주진로 379-61] |
시대 | 고대/삼국 시대/신라 |
집필자 | 조원영 |
성격 | 사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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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화 | 055-365-4181 |
팩스 | 055-365-4186 |
홈페이지 | 미타암(http://mita.homejoa.com) |
건립연도/일시 | 646년[추정] |
[정의]
경상남도 양산시 소주동에 있는 대한불교조계종 제15교구 본사 통도사 소속 사찰.
[개설]
미타암은 국도 7호선에서 덕계와 서창의 중간 지점에 있는 주진마을 천성산(千聖山)의 중턱에 위치한다. 대한불교조계종 제15교구 본사인 통도사(通度寺)의 말사다.
[건립경위 및 변천]
646년(선덕여왕 15) 원효대사가 창건한 것으로 전하며, 원효대사가 창건한 89암자 가운데 하나로 본다. 920년(경명왕 4)에 지공대사가 중창하였다. 1376년(우왕 2)에 중창했으며, 1888년(조선 고종 25)에 다시 정진(正眞)이 중창하였다. 구한말에 우리나라의 선사상을 부흥시킨 경허(鏡虛)의 제자 혜명(慧明)[1861~1937]이 주석했으며, 현재 그의 비석이 남아 있다.
[현황]
미타암은 천연 동굴에 인공을 가해 조성한 석굴 사원이다. 현존하는 당우(堂宇)로는 대웅전·산신각·요사채 등이 있으며, 대웅전에는 석조아미타여래입상이 모셔져 있다. 석조아미타여래입상은 높이 1.5m 정도 되는 석단 안쪽에 모셔져 있으며, 광배와 연화대좌, 불신(佛身)이 단일석으로 되어 있다. 연화대좌는 정면과 측면에 각각 2구씩 장식되어 있는 사각 받침대 위에 중대석이 없이 귀꽃 모양의 장식이 있는 앙련석과 복련석으로 이루어져 있다. 대좌 위에 있는 불상의 높이는 1.49m이다.
나발(螺髮)의 머리에는 큼직한 육계가 있으며, 복스럽고 둥근 얼굴에 눈두덩이를 두툼하게 표현하였다. 양쪽 귀는 어깨까지 길게 늘어졌으며 목에는 삼도(三道)가 있으나 이마에 백호는 없다. 옷차림은 통견(通肩)이며, 상체에서는 넓은 어깨띠가 어깨에서 흘러내려 배에서 매듭지어지며, 하체에서는 U자형의 옷주름이 반복적이며 규칙적으로 흐르도록 표현되었다. 또한 오른팔에서 흘러내린 옷주름은 지그재그로 곡선을 그리면서 발목까지 내려와 있다. 옷자락 밑으로는 발가락이 매우 긴 맨발이 그대로 드러나 있다.
수인(手印)은 왼손을 늘어뜨려 손바닥을 드러내 보이고 오른손은 가슴에 대고 엄지 손가락과 집게 손가락을 맞댄 설법인(設法印)을 하고 있다. 광배(光背)는 끝이 뾰족한 배[舟] 모양으로 높이가 2.05m이다. 광배의 상단은 약간 안으로 휘었으며, 안에는 2줄의 굵은 선으로 두광(頭光)와 신광(身光)을 구분하였다. 그 사이에는 좌우대칭으로 연화문을 새겨 넣었으며, 광배의 가장자리는 화염문(火焰文)으로 장식하였다.
이 불상은 머리에 있는 큼직한 육계와 어깨까지 내려온 귀, 풍만하면서도 우아한 인상, 왼손을 몸에 붙여 곧바로 내리고 오른손을 가슴에 댄 모습, 둥근 어깨와 평판적인 가슴, 대좌 위에 곧바로 선 자세 등이 특징적이다. 이 불상은 이러한 신체적 특징과 함께 불상 전체가 단일석으로 조성된 점에서 719년에 조성된 감산사 석조아미타불입상(국보 제82호)의 양식을 이어받은 것으로 판단된다.
이 불상과 관련하여 『삼국유사』 포천산 오비구조에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다. “삽량주에서 동북쪽으로 20리쯤 떨어진 곳에 포천산(布川山)이 있고, 거기에는 완연하게 사람이 쪼아 만든 듯한 기이한 석굴이 있다. 여기에 이름조차 알 수 없는 비구 다섯 사람이 와서 살면서 아미타불을 부르고 서방 극락세계에 왕생할 것을 기도한 지 수십 년 만에 갑자기 성중(聖衆)이 서방 극락으로부터 와서 그들을 맞이하여 갔다.
이에 다섯 비구는 제각기 연화대에 앉아 하늘을 날아가다가 통도사 문 밖에 이르러 머무르게 되었는데, 하늘의 음악이 간간이 들려왔다. 절의 중들이 나와서 보니, 다섯 비구는 무상고공(無常苦空)의 이치를 설명하고 유해를 벗어버리고 큰 광명을 쏘면서 서쪽으로 갔다. 그들이 유해를 버리고 간 곳에다 절의 중이 정사를 짓고 이름을 ‘치루’라고 하였는데, 지금도 남아 있다.”
포천산은 웅상읍의 천성산으로 추정된다. 미타암 석조아미타여래입상은 바로 『삼국유사』에 기록되어 있는 서방 극락세계로 날아간 다섯 비구가 수도하던 석굴에 모셔진 불상으로 판단된다.
[관련 문화재]
석조아미타여래입상은 보물 제998호로 지정되어 있다.
[의의와 평가]
미타암은 천연 동굴이지만, 인공을 가한 흔적이 있는 것으로 미루어 본다면, 8세기 통일신라시대에 성행하던 석굴 사원 조영의 한 단면을 살필 수 있는 귀중한 자료로 평가된다. 또한 미타암에 모셔진 석조아미타여래입상은 신라 아미타신앙의 전개 과정을 이해할 수 있는 좋은 자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