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140041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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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白受繪 |
영어음역 | Baek Suhoe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경상남도 양산시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송봉구 |
[정의]
조선 중기 경상남도 양산 출신의 문신.
[가계]
본관은 양산(梁山). 자는 여빈(汝彬), 호는 송담(松潭). 원래 부여(扶餘)백씨이다.
[활동사항]
백수회는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이 일어났을 당시 19세였으며, 재실에서 독서를 하다가 왜인에게 붙잡혀 일본에 가서 9년 만에 돌아왔다. 일본에서의 포로 시절 충절과 기개를 지킨 것으로 유명하며 이때 지은 가사나 한시들이 지금도 전해오고 있다.
백수회는 옳고 그름에 사리가 밝아 광해군의 난정으로 민심이 흉흉함을 보고 여러 번 상소하여 맹렬히 비판하였고, 1623년 인조반정 후 예빈시참봉(禮賓寺參奉)과 자여도찰방(自如道察訪)을 역임하였다. 만년에는 후학 양성에 힘쓰며 칩거하다가 69세의 일기로 별세하였다.
[학문과 사상]
일본에 포로로 잡혀갔을 때 왜적 우두머리가 백수회에게 무릎을 꿇고 항복하라고 하자, 백수회는 도리어 적장을 꾸짖고 죽음을 무릅쓰며 저항하기를 "차라리 죽어서 이씨의 귀신이 될지언정 견양(犬羊)의 신하는 되지 않겠다(寧爲李氏鬼 不作犬羊臣)"라는 구절을 남겼다.
백수회가 남긴 작품 중에 「도대마도가(到對馬島歌)」가 있다. 그 전문은 다음과 같다. "해운대 여휜날의 대마도 도라드러/ 눈물 베셔고 좌우를 도라보니/ 창파만리를 이어대라 할게이고/ 두어라 천심조순(天心助順)하면 사반고국(使返故國)하리라." 이를 현대어로 번역하면 다음과 같다. "해운대를 떠나 대마도로 돌아들어/ 눈물을 닦고 좌우를 돌아보니/ 넓은 바다 만 리에 어디라 할 것인가?/아 천심이 순조롭게 도와주면 나를 고국으로 돌아가게 할 것이다."
위의 가사를 통하여 몹시 어려운 상황에서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불굴의 정신력과 ‘천심(天心)’을 믿는 유학자의 천명사상을 엿볼 수 있다.
[저술 및 작품]
임진왜란을 배경으로 한 한시 11수와 「여동래조선인서(與同來朝鮮人書)」라는 편지 한 통, 「도대마도가(到對馬島歌)」, 「재일본장가(在日本長歌)」, 「단가(短歌)」, 「화경도인안인수가(和京都人安仁壽歌)」 등의 가사 4수를 남겼다.
[묘소]
백수회의 묘소는 경상남도 양산시 동면 사송리에 있다.
[상훈과 추모]
백수회는 사후 호조참의에 추증되었으며, 1696년(숙종 22)에 양산군수 조무훈이 충렬사를 세워 임진왜란 당시 양산군수를 역임한 조영규와 함께 배향하였다. 1717년(숙종 43)에 서원을 세우고 위패를 옮겨 봉안하였으며, 동년 12월 17일 송담서원이라 사액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