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30125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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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南鍾三 |
이칭/별칭 | 증오(曾五),연파(煙波),중재(重齋),요한 |
분야 | 종교/기독교,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종교인 |
지역 | 경기도 양주시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전정해 |
출생 시기/일시 | 1817년 - 남종삼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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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838년 - 남종삼 정시문과 병과 급제 |
몰년 시기/일시 | 1866년 3월 7일 - 남종삼 사망 |
추모 시기/일시 | 1968년 - 남종삼 가톨릭 복자에 추대됨 |
추모 시기/일시 | 1984년 - 남종삼 가톨릭 성인에 추대됨 |
추모 시기/일시 | 2002년 - 성 남종삼 기념관 건립 |
출생지 | 충청북도 충주시 |
묘소 | 남종삼 묘 - 경기도 양주시 장흥면 울대리 산22-2 |
기념관 | 성 남종삼 기념관 - 인천시 강화군 내가면 고천리 1486 |
성격 | 종교인 |
성별 | 남 |
대표 경력 | 좌승지 |
[정의]
경기도 양주시에 묘소가 있는 조선 후기의 천주교 순교자.
[가계]
본관은 의령(宜寧). 자는 증오(曾五), 호는 연파(煙波) 또는 중재(重齋). 세례명은 요한. 증조할아버지는 남규로(南奎老), 할아버지는 남이우(南履佑), 아버지는 충주부사를 지낸 천주교 순교자 남상교(南尙敎)이다. 친아버지는 남탄교(南坦敎)로, 어려서 큰아버지에게 입양되었다. 첫째 부인은 신행권(申行權)의 딸이고, 둘째 부인은 이상회(李象會)의 딸이다. 아들은 남규희(南揆熙)다.
[활동 사항]
남종삼(南鍾三)[1817~1866]은 충청북도 충주에서 태어났다. 남인 계열의 농학자 아버지의 가르침을 받고 자라 1838년(헌종 4) 정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홍문관 교리, 영해 현감(寧海縣監)[영해는 지금의 경상북도 영덕군]을 거쳐 좌승지를 지냈다. 고종 초에는 왕족 자제들의 교육을 담당하였으므로 자연 당시의 실권자인 흥선대원군(興宣大院君)과도 친교를 가졌다.
남종삼은 1827년(순조 27) 북경에서 영세를 받고 천주교 신자가 된 아버지 남상교의 영향도 컸으나 스스로도 동전한문서학서(東傳漢文西學書)를 읽고 천주교에 입교하였다. 프랑스 출신인 리델(Ridel) 신부에게 조선말을 가르쳤고, 베르뇌(Berneux) 주교를 자신의 집에 숨겨 주기도 하였다고 한다.
남종삼은 흥선대원군에게 빈번이 국경을 침입하는 러시아에 대응하기 위해 서양 국가들과 동맹을 맺어야 한다며 프랑스 선교사와의 면담을 제안하였다. 그러나 면담이 지연되는 동안 흥선대원군은 심경의 변화를 일으키고, 설상가상으로 북경에서 천주교 박해가 일어났다는 잘못된 정보가 전해지자, 그의 태도는 천주교 접근에서 박해로 돌변하여 천주교 박해령을 내리게 되었다.
1866년(고종 3) 천주교 신자들을 대대적으로 색출하라는 명이 떨어지자 남종삼은 9명의 프랑스인 신부 및 신자들과 함께 붙잡혀 3월 7일 서울 서소문 밖 네거리에서 참수되었다. 얼마 후 아버지 남상교는 공주에서, 아들 남규희는 전주에서, 부인 이 소사(召史)는 창녕에서 순교하였다.
[묘소]
묘소는 경기도 양주시 장흥면 울대리 천주교 길음동교회 묘원 내 의령 남씨 가족 묘역에 있다. 묘원 입구에서 안내 표지를 따라 가다가 두 번째 표지에서 오른쪽으로 가면 우측에 ‘성(聖) 남종삼(요한) 묘역’이라는 표지석이 나온다. 여기서 50m가량 올라가면 남종삼의 묘가 있다. 원형 봉분 앞에 비석이 있고, 옆면과 뒷면에 묘갈명이 새겨져 있다. 묘갈에 따르면 남종삼의 유해 일부는 바티칸 교황청에 봉안되어 있다고 한다. 묘역 안쪽에 아버지 남상교와 아들 남규희의 무덤이 나란히 있다.
[상훈과 추모]
1968년 10월 6일 교황 요한 바오로 6세에 의해 복자(福者)로 추대되었고, 1984년 5월 6일 서울 여의도광장에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에 의해 102명의 복자들과 함께 성인(聖人)에 추대되었다. 2002년 강화군 내가면 고천리 바다의 별 청소년수련원 내 일만위 순교자 현양동산에 성 남종삼 기념관이 세워졌다. 이곳에 남종삼의 유해 일부가 모셔져 있다.